[대한민국 `문과` 공화국] (하)대통령 의지에 달렸다

 2000년대 중반 전 세계에 환경규제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세계 양대 자동차회사는 상반된 움직임을 보였다. GM은 환경규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법적으로 대응한 반면에 도요타는 환경규제를 만족할 수 있도록 엔지니어 채용을 늘렸다. 몇 년이 지난 이후 결국 승자는 도요타로 판명됐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법과 정책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사회적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과학기술적으로 푸는 사고가 요구된다”고 이공계 공직자 확대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정부는 5년마다 수립해야 하는 공직 내 이공계 인력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실질적인 정책 결정권자인 3급 이상 고위공무원단 내 이공계 비중을 2013년까지 30%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인사·예산·조직 등 공통 직위와 복수직위에 이공계 비율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목표는 참여정부 시절보다 크게 후퇴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2008년 목표치로 잡았던 4급 이상 이공계 비율 채용 예상치는 34.2%였다. 실제로는 지난해 4급 이상 이공계 비율이 30.9%였다. 고위공무원단의 이공계 비율은 25.5%였다. 5급 신규채용 인력 중 기술직 채용비율을 40% 수준으로 유지, 오는 2013년까지 50%까지 높이기로 한 목표치도 하향 조정했다. 현 정부의 목표가 이전 정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부처 간 격차는 더 큰 문제다. 식약청과 기상청 등의 고위공무원단 내 이공계 비율은 70%를 넘지만, 여성부·법제처·공정위 등은 전무하다. 공정위가 최근 윈도 끼워팔기, 퀄컴 불공정 거래 등 기술적 이슈에 집중하는 점을 감안하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기획재정부, 국무총리실 등 이른바 힘 있는 부처의 이공계 채용 비율도 한 자릿수에 머문다. 신문주 한국정책분석평가협회장은 “여러 과학기술과 산업 정책 현안을 조정해야 할 국무총리실이나 기획재정부 등에 이공계 정책담당자가 드물다는 것은 문제”라며 “중앙정부는 그나마 관리가 되지만 지자체는 이공계가 거의 현장직에 머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태유 교수는 “공무원은 법을 만들고 예산을 다루는 고도의 전문가 집단이나 배타적이어서 외부에서 들어와 성공하기 쉽지 않다”며 “초기 채용부터 문호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행정고시와 같은 국가 공무원 시험에서 이공계 채용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은 “공무원시험에서 이공계 응시율을 높이기 위해 선택 과목에 물리, 화학 등과 같은 과학기초 과목을 배정하는 것이 요구된다”며 “이렇게 돼야 과학적 사고를 갖추면서도 공무원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테크노크라트 배출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이공계 출신의 공무원 경력 관리를 중앙정부가 별도로 하는 방안, 외국처럼 정부부처 고위직군 희망자 중 이공계끼리 경쟁해 선발하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대학 선발 과정에서 지역 안배, 특정부문 성적우수자를 선발하는 것처럼 공무원 선발과정에서 행정직, 외무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공계 특례제도를 만들어 뽑는 것도 대안이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의 의지다. 정무직, 공공기관장 등 수천여명의 인사 추천을 비롯해 인사업무 전반을 관리하는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서 이공계는 전무하다시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지역·대학 등을 안배하지만 이공계 안배는 사실상 뒷전이다. 조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철옹성을 쌓은 현행 인사시스템에서 대통령이 이공계에 대한 정책 배려 의지를 갖지 않는 한 이공계 홀대론이 여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