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이 발간한 2008 게임백서에 따르면 2007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돼 있는 게임 제작업체의 수는 2792개로, 한때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게임 제작업체의 수가 2005년을 기점으로 정체 및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해를 거듭할수록 온라인 게임 산업의 규모가 방대해지고 시장 규모도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게임 회사 수는 크게 늘지 않는 이 현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1996년 ‘바람의 나라’ 서비스 시작 이후 정부의 IT산업 육성 의지 표명, PC방 활성화 등의 호재가 겹치면서 온라인 게임 개발 열풍이 불었다. 수백개의 중소 게임 개발사가 생겨났고 독창적인 기획력과 탄탄한 개발력을 갖춘 회사도 다수 나타났다. 다양한 규모와 색깔의 게임사들이 공존했던 이 시기가 국내 온라인 게임사의 1차 르네상스라는 데에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중소 개발사가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췄다. 기업계에 횡행하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게임 업계에도 예외를 두지 않은 탓이다. 실력 있는 개발사들은 대기업에 인수합병되고, 게임을 잘 만들어도 마케팅 비용이 부족하면 시장에 승부수를 걸어볼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수년간 개발 비용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맨 개발사들은 고대하던 게임 론칭을 코앞에 두고도 막대한 마케팅, 홍보 비용에 다시 발목을 잡혔다.
게임 산업의 성장을 가늠함에 있어 수치적 성과만을 잣대로 한다면 이러한 업계 재편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인 업계 성장, 글로벌 시장에서의 국내 게임 산업 위상 등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한다면 결코 중소 게임 개발사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중소 게임 개발사는 우리 게임 시장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게임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보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은 콘텐츠 산업이다. 산업 특성상 창의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데도 불구,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져 ‘그들만의 리그’에서 게임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레 결과물이 비슷해지고 제작 방식이 고착화되게 마련이다. 콘텐츠 산업의 창의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중소 개발사 육성은 필수다.
이를 위해 정책적 지원, 게임 소비 문화의 성숙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퍼블리셔의 역할이다. 중소 개발사의 무대를 만들고 그들의 색깔을 인정하며, 퍼블리셔와 개발사가 공존해 나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윈윈 모델을 성공적으로 발굴해낼 때, 게임산업 발전에 있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리퍼블리싱’이 주목받고 있다. 리퍼블리싱은 한 번 서비스됐다 중단되거나 인기가 시들해진 게임을 다시 계약해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시장 경쟁이 삼화하면서 작품성이 뛰어나도 빛을 보지 못하는 게임을 개선해 다시 서비스하는 형태다. 퍼블리셔 쪽에서는 시장에서 한 번 검증된 타이틀을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를 덜 수 있고 개발사 측에서는 초기 시행착오를 수정하고 재도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수많은 게임을 접해본 아이템마니아 회원들에게서 리퍼블리싱 게임이 이런 긍정적 반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게이머들이 다양한 게임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누가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롭겠느냐마는, 개발력 있는 회사들이 자본에 의해 정리해고되는 일은 게임 업계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허리가 튼튼한 게임 업계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훈 IMI 사장 eric@imicor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