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회가 열렸다. 역시 달리기가 긴박감이 있다. 4명씩 달려 1등에겐 영예로운 도장을 찍어준다. 어느 팀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천천히 달리는 아이 덕에 뜻밖의 아이가 1등이 되는가 하면, 어느 팀은 모두 토끼처럼 빠르게 뛰어 막상막하로 아슬아슬하게 1, 2등이 갈린다. 아들 차례가 됐을 때 아들과 견주게 될 나머지 3명을 관찰한다. 아들이 빨리 달려주기를 기도하기보다 나머지 3명이 느리게 달려주기를 기도한다.
속도는 아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가 결정한다. 아들이 아무리 빨라도 나머지 3명보다 빨라야 1등 도장을 받기 때문이다. 아들은 결국 2등을 했다. 전교 계주선수와 상대해 간발의 차로 2등을 했다. 2등한 아들에게 1등한 아이가 너무 빨라서였다고 위로했다. 아들은 순위는 2등을 했지만 속도는 신기록을 세운 것 같다며 흐뭇해 한다. 잘 달리는 친구랑 대적하니 훨씬 빨리 달렸단다. 순위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속도는 자랑스럽단다.
꼴등을 했지만 쟁쟁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만으로 명예가 될 수도 있고, 1등을 했지만 짜고서 나눠먹기를 한 것이라면 멍에가 되기도 한다. 상대평가로 순위를 매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절대평가로 속도를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상대평가에 길들여져 하향평준화되는 것보다 절대평가를 통해 지향점을 높여야 한다.
“그 사람보다는 낫다”보다 “나의 기록은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해보자. 상대적인 순위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속도도 중요하다. 어부지리로 1등한 사람보다 막상막하로 2등한 사람이 1등 도장은 못 받아도 박수는 받는다. 상대보다 빨라야 하지만 내 기록은 어디까지인지 점검해보자. 자기 스스로를 발전시키려면 순위보다 속도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