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경영진 무더기 국감증인 신청

이벤트성 정치 감사로 전락 우려

 정보기술(IT) 업계 경영진이 무더기로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애초 취지와는 달리 연례적인 정치성 감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이미 해결방안이 제시돼 일단락 순서를 밟는 정책을 재검토하는가 하면 이벤트성, 폭로성 이슈에다 기업 비즈니스모델까지 거론하는 등 ‘의도적인 업계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증폭됐다. 한국경제의 역군으로 24시간이 모자란 IT 경영진이 국감장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국가적 낭비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30일 국회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국토해양위·지식경제위 등 상임위가 잇따라 국감 일반 증인·참고인을 확정하면서 IT업계 CEO들을 무차별적으로 증인으로 채택했다. 특히 문방위는 일반 증인으로 모두 26명을 채택한 가운데 IT업계 경영자가 무려 9명으로 40%에 육박했다.

 최근 이슈로 떠오른 이동통신 요금 인하 문제와 관련해 KT·SKT·LGT 경영진이, 상생기금 관련 법 문제로 NHN·다음 등 포털 양대기업 임원이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허진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김정호 한국게임산업협회장 등 업계 대표와 안철수연구소·한전KDN·애플코리아 등 업종별 주요 CEO가 대거 포함됐다. 국토위에선 LG CNS 대표도 증인으로 선정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접 “민간인, 경제인 등을 (국감에) 출석시킬 때는 꼭 필요한 때에 한정하라”는 당부성 지침까지 내렸으나, IT분야 증인은 예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어 유독 국회의원들의 표적이 됐다는 지적이다.

 IT업계는 국감이 이른바 ‘군기잡기용’ 기업감사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특히 2개월여간 논란 끝에 이동통신업체들이 대규모 계획을 발표한 요금 인하 문제, 정부·여당 안이 이미 만들어진 분산서비스거부(DDoS) 대책 등에 대해 다시 국회에서 해명하고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불만을 쏟아냈다.

 이동통신사 한 임원은 “몇 개월째 논란인 문제를 국회에 나가서 하루종일 대기하고 질책을 받으며 다시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이유에 대부분 의문을 갖고 있다”며 “특히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바쁜 경영진이 직접 국감장에 불려 나가면서 일상 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업 고유의 비즈니스 영역마저 국감 대상으로 끌어들여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도 높다.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은 게임 포털업계의 일반적인 부분유료화 모델인 게임머니 간접충전 방식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며 김정호 게인산업협회장의 출석을 요구했다. 애플코리아는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아이폰 보조금 문제로 외국인 대표가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장에 불려가는 희한한 상황에 직면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5년 이상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은 게임포털 과금 문제를 느닷없이 문제로 삼고, 아직 국내 통신업체와 협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CEO를 증인으로 불러내면 대외신인도 추락이 뻔한데도 증인 채택을 강행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IT업체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한 임원은 “국감 시절이 다가오면 주요 경영진이 증인으로 채택돼 국회에서 망신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거의 전쟁을 치른다”며 “최근에는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을 영입해 국회의원들과 협상하는 후진적 시스템까지 생겨날 정도”라고 털어놨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