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세종기지에 따뜻한 격려를

 남위 62도 13분, 서경 58도 47분. 주소 사우스셰틀랜드제도 킹조지섬 맥스웰만. 서울에서 로스앤젤레스(10시간)나 뉴욕(12시간)을 경유, 칠레 산티아고(12시간)를 거쳐 남단 푼타 아레나스(4시간)까지 간다. 여기까지만 최소 사흘이 걸린다. 다시 공군기를 타고 2시간 30분을 비행하면 킹조지섬에 도착, 마중나온 대원의 안내를 받아 40분간 배를 타고 거친 파도를 헤쳐가야 한다. 이것도 기상 조건이 좋을 때를 전제로 한다. 이곳이 서울에서 1만724㎞ 떨어진 세종과학기지다.

 남극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자원의 보고’다. 우리나라의 남극 진출은 매우 늦은 편이다. 1959년 조인된 남극조약에 지난 1986년 세계 33번째로 가입하고 1988년 킹조지 섬에 첫 상주 연구기지인 세종과학기지 준공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비록 후발주자였던 우리나라는 이후 활발한 연구활동과 체계적인 기지관리를 통해 주변국들로부터 공동연구를 제안받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세종기지는 보통 1년을 기한으로 20여명이 안 되는 연구원을 포함한 월동대원들이 근무한다. 이들에게는 집과 직장 구분이 없다. 기지 밖을 나가면 1년 평균기온 영하 30도의 추위나 눈보라와 싸워야 한다. 물론 대원들에게도 휴식과 오락이 있다. 인접한 다른 나라 기지 대원들과 축구시합도 한다. 미니 올림픽도 열린다. 또 위성으로 인터넷도 접속하고 국내에서 정기적으로 오는 비디오나 책을 본다. 그래도 국내 근무하는 것보다 나을 수 없다.

 얼마 전에는 세종과학기지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난 7월에 발생한 세종과학기지 대원 간의 폭력 사건이 동영상과 함께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술에 취한 총무가 주방장을 일방적으로 때린 사건이었는데 사후처리 과정에서 극지연구소의 미숙한 대처가 문제였다. 이 사건으로 13개월 동안 가족과 떨어져 추운 남극에서 고생하는 이들의 열정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난 2003년 조난당한 동료 연구원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전재규 대원을 기억한다. 세종기지 입구에 동료 연구원들이 그의 동상을 세웠다.

 세종기지에 기쁜 소식도 전해졌다. 조만간 그동안 염원이었던 쇄빙선 아라온이 시운전 후 세종과학기지를 운영하는 극지연구소에 인도될 예정이다. 한진중공업이 건조한 아라온은 국내 조선역사의 한 획을 긋는 쾌거일 뿐 아니라 남극 진출을 국제사회로부터의 인정받는 진정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필요할 때마다 하루 8000만원이라는 임차료를 내고 사용해 왔다. 이러니 제대로 된 실험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라온의 진수는 특히 세종과학기지 대원들의 자긍심을 한층 높여줄 전망이다. 극지연구소가 운영하는 세종과학기지 홈페이지에는 대원들의 쇄빙선을 갈망하는 글이 여러 편 올라왔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사건으로 세종기지 대원들은 의기소침해 있다. 지금 세종기지 대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어떤 물질적 지원보다 따뜻한 격려다. 그래서 극지연구소 이홍금 소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의 글이 애절하다.

 “지금도 세종과학기지에는 가족과 떨어진 월동대원들의 외롭고 힘든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기지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의 사기진작과 안정적인 연구활동, 기지운영에 대한 지원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홍승모 전자담당 부장 sm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