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포럼] 北-中 SW 협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https://img.etnews.com/photonews/0910/091015051622_122391762_b.jpg)
최근 북한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총리와 북한 당국이 ‘소프트웨어(SW) 산업분야 교류협조 양해문’을 교환했다는 소식이다. SW는 그동안 추진된 남북 IT협력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 왔던 분야라서 우리에게 주는 의미도 적지 않다. 어찌 보면 북한이 최근 들어 크게 위축된 남북 IT협력을 대신해 중국과 협력을 강화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SW 분야를 독립해서 총리급 합의문에 넣었다는 것이, 북·중 IT협력도 남북협력 못지않은 불균형을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는 하드웨어기 때문이다. 강성대국 실현을 위해 추진하는 제3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2008∼2012년)에 이런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북한의 5개년계획을 살펴보면, 20개의 중점과제 중 6개가 IT분야로서 전력분야와 함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 ‘21세기는 정보화의 시대’라고 하면서 IT산업 육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주력방향과 기술 수준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북한의 IT 분야 중점과제는 대용량디지털교환기와 대형디스플레이·대형병렬컴퓨터·RFID 등 기본적인 전자제품의 개발, 생산과 광섬유 품질 개선, 은행관리를 포함한 경영관리의 컴퓨터화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반적으로 국가통신망 현대화와 생산현장 자동화를 통해 생산, 배급, 회계 등의 대용량 정보처리를 통합전산화함으로써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강화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업주도형, 소비자가전 중심의 자본주의국가들과 달리 사회주의 북한의 IT 산업은 국가주도형, 인프라 중심으로 발전한다. 자연히 IT산업의 특징인 시장으로부터의 기술혁신과 자본유입이 부족하고, 국가에서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결국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관련 부품산업이 낙후한 북한이 자력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SW산업에도 사회주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다. 게임이나 인터넷 등 소비자지향형 SW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북한은 경제관리와 은행관리 등 사회주의 계획경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이런 환경에서 양성된 북한 IT 인력들이 우리가 원하는 SW를 적시에 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바닥에 깔면, 북한과 중국의 SW 협력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30여년간 시장경제에 몰입하면서 SW를 포함한 IT산업도 우리와 유사한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
따라서 중국어와 시장 환경에 미숙한 북한 인력들이 중국이 원하는 SW를 경쟁력 있게 개발해 줄지는 의문이다. 중국 내에 협력단지를 만들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의 고급인력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북한 인력들의 중국 체류를 크게 확대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SW 공동개발은 기존에 대거 중국에 진출해 있는 북한 IT 인력들의 다양한 활동을 용인하는 수준을 크게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북한이 국내용으로 중국에 요청하는 SW는 상당히 많을 수 있다. 생산현장 자동화에 필요한 수많은 프로그램을 자체로 개발하지 못하는 북한의 현실에서, 장기간의 경험과 성과들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 도움을 줄 수 있다. 결국 북한과 중국의 SW협력도 공동개발보다는 중국의 일방적인 지원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남북협력팀장//cglee@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