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종종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라고 이야기한다. 만약 한글이 없었더라면 엄청난 문맹률은 물론이고 국가 발전에 필요한 각종 지식의 습득·공유·축적 등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에 버금가는 큰 변혁을 소프트웨어에 기대해 보면 어떨까. 소프트웨어는 인간 두뇌 기능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현대적 기술이며 앞으로 우리나라가 지식기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기반이 되는 핵심기술이다. 또 금융·유통·기업경영뿐 아니라 정부의 행정전산망 등 대규모 정보관리 및 운영 효율 극대화를 위한 핵심 인프라다. 모든 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기반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정부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정보기술(IT)과 자동차·조선 등 기존산업, 바이오·나노 등의 신성장 동력 산업 그리고 에너지·환경 등의 녹색성장산업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역할·비중을 봐도 알 수 있다. 세계 시장규모가 약 1000조원에 이르며 이는 반도체, 휴대폰 산업의 4∼6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분야 종사자 인력은 전체 직업인의 2% 정도로 OECD 국가 평균인 4%의 절반가량이다. 또 근무환경이나 임금 면에서 3D업종으로 인식돼 대학에서는 기피학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나는 우리나라가 21세기 지식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분야 종사자 비율이 최소한 5% 이상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이에게 소프트웨어 분야의 장래 비전을 제시하는 일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정부는 소프트웨어 저작권 법제화를 기반으로 개발자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려 하고 있다. 시의적절한 일이다. 저작권뿐만 아니라 표준화·보안·규제 등 소프트웨어 분야 내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매우 많고 또한 중요하다.
지난 8월 중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정부의 SW 산업 육성 및 기술개발 전략과 관련해 권고한 다음 몇 가지는 새삼 음미할 가치가 있다.
첫째, 무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폰의 다양한 콘텐츠 및 서비스 산업 활성화다. 이를 위해서는 무선 데이터요금의 대폭 인하 및 도시 내 무선 네트워크 같은 기본 인프라 구축 등이 뒷받침돼야 하며, 국내 기술로 개발된 광대역 무선통신 서비스(와이브로) 등이 활용돼야 할 것이다.
둘째, 소프트웨어는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관련돼 있는 만큼, 국가 연구개발에 대한 범부처적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이 시급하다. 최근 임명된 IT 특보에게 이에 대한 리더십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셋째로, 세계 정보통신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와해성 신기술 개발의 필요성이다. 미국이 이미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네트워크 및 서버 중심의 컴퓨팅 기술보다는 반도체나 단말기 산업이 강한 우리나라에 더 유리한 단말기 중심 서비스 관련 신기술 개발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부 정책들이 산업 및 연구개발 현실에 적극 반영돼 우리나라가 21세기 지식강국으로 우뚝 도약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분야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바란다.
이귀로/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국가위 첨단융복합기술 전문위원 krlee@ee.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