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일수록 희망(希望)을 노래한다.
희망의 노래는 기뻐서 부르는 게 아니다. 힘들고 팍팍해서, 더 이상 ‘꿈’ ‘미래’가 없을 때 부른다.
인간이 희망을 노래하는 때는 지금은 몹시 절망적 상태라는 자기고백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고백 속에는 적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다. 그 욕망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한다.
희망 그 뒷면에는 빙산처럼 더 큰 절망이나 고통이 숨어 있다. 절망적일수록 희망에 대한 욕망이 강해진다. 마치 로또복권처럼. IMF 때 내가 그랬고, 우리가 그랬다. 지난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내가 다니는, 내 친구가 다니는 기업이 그랬다. 대한민국 중소기업 모두가 그랬다.
중소벤처기업은 요즘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MB정부 출범 이후 2년간 밖으로는 금융위기와 키코문제, 안으로는 내수가 곤두박질 치면서 절망 속에서도 노래하는 법을 배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영역이 붕괴되면서, 대형 유통업체는 골목상권으로 들어왔다. 유통비를 줄이려 TV홈쇼핑 채널에 들어갔더니 이것저것 떼어가는 수수료가 참 많다.
정부는 내년 예산에서 중소기업 지원자금을 죄다 삭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나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이미 금융권은 수금에 들어가고 있는데 아직은 출구전략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버젓이 말한다.
이 땅의 중소기업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대한민국 중소기업들은 바람이 분 뒤에서야 그게 칼바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그게 구조조정의 시작이고, 임금체불의 시작이라는 것을, 공장가동을 멈춰야 하는, 내 아이 학원비를 줄여야 하고 분유값을 걱정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바보처럼 늦게 알았다. 1997년 이미 겪어 단련됐다고 했지만, 참담했다.
이명박정부는 알기는 한 걸까. 대한민국 중소기업 사장들이 왜 ‘9988’을 외치는지, 소주잔을 들고서 ‘위하여’를 외치는지, 내년 중기예산을 대폭 깎아댄 공무원과 의원님들은 알까. ‘9988’은 대한민국의 중심이 중소벤처기업에 있음을 알아달라고 외치는 비명 또는 항의성 메시지라는 것을, ‘위하여’는 우리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자는 절규라는 것을 알까.
대한민국 중소벤처기업은 대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이고, 현금을 쌓아두면서 ‘더블딥 가능성’ ‘경제전망 불확실’을 이유로 ‘내년에나 투자하겠다’고 하는 지금,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에서 대기업의 원가절감 압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내일을 기다린다.
2009년 중소벤처기업인들은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는 말과 ‘중소기업 자금줄을 죄겠다’는 소리가 이음동의어라는 것쯤은 안다. 청와대나 중기청이 4대 강, 녹색성장, 신성장, 입시문제, 부동산 문제, 교육문제, 광우병 파동에 밀려 2년째 ‘벤처’ 소리조차 못 내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27일 벤처기업협회는 ‘벤처 르네상스를 열다’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 아니라 ‘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희망의 나라로’ 가려면 ‘험한 바다물결’을 헤쳐가야 한단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은 지금 격랑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