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40년, 초일류의 역사] 삼성전자, 끊임없는 `신화 창조`

[삼성전자 40년, 초일류의 역사] 삼성전자, 끊임없는 `신화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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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12월 1일.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타계한 지 꼭 12일 되는 날, 이건희 회장은 삼성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했다. 그 해 삼성 매출은 13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21년이 흐른 2008년. 삼성그룹 대표주자인 삼성전자는 매출 121조3000억원, 영업이익 6조원을 냈다. 올해 삼성전자 매출은 본사 기준으로 사상 최초로 매출액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1969년 1월 13일 창립 당시 종업원 수 36명, 매출액 3700만원의 작은 회사에 불과했던 삼성전자공업(삼성전자 전신)은 40년 세월 동안 외형과 체질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무실 하나에 불과 30명 안팎 임직원에서 국내에만 9개 사업장에 직원 16만1700명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8년 IMF 외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삼성전자는 세계 전자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올해로 창립 40년을 맞는 ‘불혹’ 삼성전자가 오는 11월 1일 생일을 맞는다.

 # ‘불혹의 삼성’을 말한다

 삼성 특히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는 세계적 수준이다.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가 조사한 2009년 세계 100대 브랜드 가치 평가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세계 19위를 기록했다. 아시아권에서는 도요타 8위, 혼다에 이어 세번째다. 삼성 브랜드는 국내에서도 절대적이다. 한국대학신문과 인터넷포털 ‘캠퍼스라이프’가 2009년 9월 1일부터 보름간 전국 200여개 4년제 대학 재학생 1700여명을 대상으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삼성은 기업 이미지 선호도에서 1위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대학생들이 기업인 중 가장 선호하는 기업인으로 조사됐다.

품질 경영의 최후방이라는 디자인 부문에서도 글로벌 업체와 어깨를 같이 하고 있다. 2005년 이건희 회장 주재로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전략회의 이후 이뤄낸 성과다. 삼성전자는 우수 디자인 제품을 선정해 상을 주는 미국 IDEA 기업 부문 누계 순위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는 CEO 직속 디자인 경영센터와 6개 해외 연구소를 두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운영한 결과다.

 주요 품목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부품에서 시작해 세트까지 시장 수위에 올라섰다. 과거 일본 산요전기에서 기술을 도입했던 TV는 2006년 이후 3년 연속 세계 판매량 부문 1위를 기록 중이다. LCD모니터 시장에서도 글로벌 ‘넘버1’ 자리를 지켰다. D램·낸드플래시·LCD 패널 등 부품까지 합쳐 모두 12개 품목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애니콜 신화’ 휴대폰은 세계 1위 노키아와 격차를 줄이면서 1위를 위한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 10대 청년기

 1988년 3월 22일 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사에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위기 경영’을 강조했다. 제2의 창업 선언이었다. 국내 제일이라는 막연한 1등 의식이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이 회장은 “남보다 얼마나 뒤져 있는지 정확한 인식 없이는 초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 의식에서 출발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진입하자”고 제 2창업을 선언했다. 선대 회장으로부터 익히 들어왔던 이른바 ‘메기 경영론’의 한 단면이었다. 메기와 함께 키운 미꾸라지가 긴장하고 활동이 많아 수확할 즈음에는 살이 통통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이날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메기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과 일전을 당부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불혹의 삼성전자는 초일류 기업 궤도에 진입했다.

 # 20대 성장기

 1990년대 삼성전자는 신경영이 화두였다. 1993년 6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주재원 간담회에서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꾸자”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신경영을 주문했다. 1등과 2등의 엄연한 차이가 있으며 삼성은 아직 2류라는 점을 강조했다. 88년부터 내려오는 위기 경영은 90년대에도 삼성전자 경영의 큰 줄기였다. 신경영은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를 근간으로 한 7·4제를 통해 변화와 혁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IMF 사태는 삼성에도 짙은 어둠을 드리웠다. 삼성전자는 IMF 외환사태를 맞이한 1998년 7월 한달에만 무려 100억원의 이상 적자를 내기도 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전자와 금융업 외에는 어떤 회사를 처분해도 좋다”라는 말로 위기극복을 주문했다. 삼성전자에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1998년 여름 태평로 삼성 본관 회의실. 이날 회의에서는 삼성의 각 사업부별로 운명이 갈렸다. 당시 100여 개에 달하던 삼성전자 사업부 중 30여개가 ‘한계’ 사업부로 지목됐다.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2만여명에 달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 30대 도약기

 윤종용 부회장은 2004년 5월 ‘초일류로 가는 생각’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삼성전자가 나아갈 좌표를 제시했다. 핵심은 일류에서 진정한 초일류 기업이 되야 한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는 2008년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윤종용 부회장 체제가 이윤우·최지성 투톱 체제로 바뀌는 대변화를 겪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수출도 전무했던 내수 중심 소기업이 대한민국 전체 수출의 10%를 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자라났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수출은 59조7000억원으로 한국 전체 수출의 11%를 점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말 본사 기준 매출은 73조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우리경제는 물론 세계 전자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김원석기자 ston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