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 국제표준 없이 `IT강국` 없다

[리더스포럼] 국제표준 없이 `IT강국` 없다

우리의 IT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데는 국가 브랜드의 열세와 함께 기초기술력의 부족 때문이 아닌가 싶다. 휴대폰 제조업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섰지만 지금까지도 미국 퀄컴에 수조원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국내업체들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특허전문업체로부터 각종 소송을 당하면서 막대한 로열티를 지급해 달라는 요구 등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제 국제적으로 당당하게 인정받는 표준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더 이상 글로벌 기업으로 생존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기초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앞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터치폰 등에서 쓰고 있는 20핀 방식의 휴대폰 충전방식이 국제표준규격의 초안으로 선정된 것이다. 물론 한국의 20핀 방식이 내년 ITU 표준으로 확정돼야 하지만 우리의 기술이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면 휴대폰을 구입할 때마다 충전기와 충전방식을 바꿔야 하는 불편이 사라지고 휴대폰 제조사들이 수출용 모델 제조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디지털방송위원회(ATSC)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공동 개발한 모바일DTV 수신단말기에 사용되는 기술을 모바일DTV 표준으로 채택했다.

 이 기술은 도심·산악·지하 등 다양한 환경에서 시속 290㎞로 이동하더라도 화면이 끊기지 않고 TV를 시청할 수 있는 기술로 국내 기술력의 우수성을 과시한 것이다. 앞으로 북미시장에서 출시되는 모바일DTV 수신기능단말기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기술이 독점적으로 쓰이게 됐다. 이번 쾌거의 의미가 남다른 이유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경쟁보다는 협력을 기꺼이 선택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금까지 협력보다는 경쟁을 거쳐 시장을 키워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특허를 보유한 전문업체들이 기초기술을 가지고 견제하는 마당에 두 회사가 서로 가진 장점을 살려 기술표준을 이뤄내고 모바일 DTV시장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선점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에 앞서 와이브로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시킨 지상파 멀티미디어방송(T-DMB)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몇몇의 사례를 가지고 우리가 충분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기술의 국제표준이 기술경쟁력의 척도이자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고 있는 현실에서 아직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IT산업 경쟁력은 지난해보다 8단계나 떨어진 16위였으며, 세계경제포럼(WEF)도 우리나라 IT경쟁력이 2008년 9위에서 올해 11위로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우리의 경쟁력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선진국은 개도국이 급부상하고 있는 점을 감안, 범용기술보다는 선도기술 쪽에 관심을 두면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유럽연합(EU) 등은 연구개발비용을 지원할 때 기술표준화 계획서를 함께 요구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도 국가차원의 종합전략을 마련, 세계 표준이 될 수 있는 기술에 연구자금을 집중 배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 국가에 비해 자원이나 인력, 기술 면에서 모두 열세일 수밖에 없지만 정보통신·방송분야에서 세계표준을 선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선진국의 벽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정부도 이미 IT융합, 소프트웨어(SW), 주력IT, 방송통신, 인터넷의 5대 핵심전략에 향후 5년간 190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을 담은 ‘IT 코리아 미래전략’을 발표하고 IT강국의 면모를 되찾고자 움직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협력체제를 구축, 국제표준을 염두에 두면서 기술개발에 착수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면 세계표준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많을 것이며 우리는 IT강국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세한 지티앤티 대표이사 sehan@gt-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