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출근 준비에 아이들 등교 준비까지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 피곤함에 지쳐 힘들어 하는 아들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서 오늘은 아이를 특별히 학교까지 태워주었다. 정작 나는 러시아워를 피해 시간을 아끼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마다, 무엇인가 엄마로서의 역할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자책감이 든다.
출근을 하자마자 습관처럼 수십통의 메일을 확인한다. 9시 30분 갑자기 소집된 긴급회의. 기관에서 불용PC 처분을 위해 저장된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도움을 요청해왔다. 우리 회사 제품은 PC 내에 저장돼 있는 데이터 복원이 절대 불가능하도록 완전 삭제하는 솔루션이다. 정보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기업의 기밀정보, 국가의 안보정보, 개인 신상정보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보가 차곡차곡 컴퓨터 하드디스크 속에 저장됐다. 정보를 저장하고 사용해온 컴퓨터들을 폐기해야 할 시점이 오자, 저장한 정보를 어떻게 삭제해 정보기밀을 유지할 것인지가 또 다른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입력되고, 저장되고 활용돼온 데이터가 최종적으로 나의 손에 의해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고객 컴퓨터를 점검해 보니 복원 가능한 수만건의 개인 신상정보가 있는가 하면, 드라이브 인식문제 때문에 완전 삭제를 위해 다시 드라이브를 복원시켜야 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가끔 나는 거대한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필요한 데이터들을 삭제하기 위해 프로그램 속에 뛰어든 네오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사랑스러운 딸이 설거지를 해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나는 프로그램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따뜻한 가족과, 인간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일은 또 오늘같이 긴박한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가족과 직장동료의 사랑으로 무장한 나는 기꺼이 내일도 또 모레도 프로그램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나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현실의 네오’니까 말이다.
서미숙 에스엠에스 기술개발팀장 msseo@smsinf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