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세계일류화를위해]녹색생산기술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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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처리 기술이란 금속재료를 가열 및 냉각해 새로운 물성을 부여하는 생산기술이다. 적절한 열처리 과정을 거치면 기계부품, 자동차 부품 및 금형공구의 품질은 크게 향상된다. 10만㎞를 주행해도 신품 같은 자동차 엔진, 윤활유를 자주 넣지 않아도 매끄러운 기어박스, 강한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 공구, 깊은 심해에서 버티는 잠수함 강판을 만들려면 적절한 금속소재와 열처리 기술이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

 열처리는 자동차, 조선, 공작기계 등 기계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그린생산기술의 주요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열처리를 가하려면 공정별로 막대한 에너지(가스, 전기)가 필요하다.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금속소재에 원하는 특성을 부여하는 고도의 열처리 기술을 가진 국가는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열처리는 크게 표면경화(surface hardening)와 전체열처리(bulk heat treatment)로 구분된다. 최근에는 고주파, 화염, 레이저, 전자빔, 진공을 이용해 금속재료 일부에만 원하는 물성을 부여하는 첨단 열처리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모든 열처리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적 문제는 금속재료의 열변형을 막는 것이다. 정밀한 기계부품은 온도변화에 따라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따라서 설계과정에서 열변형을 미리 고려하거나 열가공 중 뒤틀림을 최소화시키는 엔지니어링 기법을 개발해야 한다. 열처리 공정을 최소화시켜 가공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필수다.

 열처리는 20세기 초반부터 제철 및 기계가공의 한 분야로서 독자적 산업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대형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을 자체적으로 열처리했지만 점차 물량, 관리비용이 커짐에 따라 외부 전문업체에 맡기는 전문 열처리 산업도 성장했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후반 중공업 육성정책에 따라서 열처리 전문기업이 하나둘 생겨났다. 임가공 열처리 산업은 하도급구조를 기본으로 하기에 수익성을 최대 요소로 하고 있다. 열처리 산업에서 가장 큰 고객은 자동차 산업이다. 열처리 내수시장에서 자동차 산업의 비중은 40%에 달한다. 자동차 분야에서 열처리는 엔진, 미션 부품의 내구성 및 원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현재 열처리 내수시장은 연간 1조원 규모며 전문 열처리 기업들은 600개로 추산된다.

 한편 녹색성장이라는 시대요구에 따라서 열처리 산업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지구환경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면 열처리 산업도 교토의정서 발효로 이산화탄소 억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금속을 가열하고 냉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에너지 소모에 사회, 환경적 제약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기업 측에서 열처리에 따른 탄소세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을 좌시하긴 어렵다. 선진국의 외주 열처리 업체들은 그 대책으로 경쟁력 유지를 위한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있다. 고만고만한 중소기업끼리 M&A해 대형화된 열처리 업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자동차업계는 연비향상, 차체 경량화를 위해 금속부품을 더욱 고강도로 가공하는 열처리 엔지니어링을 요구한다. 열처리 과정이 전혀 필요 없는 비열처리 부품의 개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친환경 전기자동차의 부상에 따른 새로운 열처리 시장이 예상되고 있다. 순수 전기차는 일반 자동차와 달리 복잡한 미션 구동장치, 엔진부품이 필요 없다. 따라서 친환경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면 열처리 산업 규모는 크게 줄어들어 대체수요 확보가 시급하다. 김성완 한국열처리공학회장은 “열처리 업계는 엔진부품의 대체수요로 연료전지 분리판, 전동모터의 고자력 강판 등 전기차 부품시장에서 새로운 가공수요를 개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열처리 기술력은 발달된 자동차 산업 덕분에 선진국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편이다. 열처리 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여 친환경 효과가 높은 진공침탄로도 올해 들어 3개 기업이 잇따라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국내 열처리 산업이 처한 현실은 여타 전통제조업종과 마찬가지로 녹록지 않다. 지나친 저가경쟁에 인력난, 자금난이 겹치면서 산업공동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열처리 산업의 문제점들>

 현재 국내의 열처리 산업 규모 및 형태로는 미래 지속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웃 일본의 열처리 산업은 여러 분야의 기간산업을 뒷받침할 만큼 수요처가 다양하고 규모의 경제를 갖췄다. 반면에 국내 열처리 산업은 자동차, 조선 등 몇몇 대기업에 종속적으로 매여 있다 보니 산업수준에 비해 기반이 취약하다. 가스비, 전기요금은 해마다 올라가는데 자동차 부품업체는 매년 3%씩 열처리 비용을 낮추라고 요구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지나친 가격경쟁의 폐해는 심각하다. 하도급업체 측에서 정석대로 하면 5시간 동안 열처리를 해야 할 과정을 3시간으로 줄이는 편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 대기업의 타이트한 원가관리는 국내 열처리 분야의 채산성을 갈수록 악화시키고 있다.

 당연히 신기술 개발에 투입할 자금과 여력도 거의 남지 않는다. 열처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은 국산 기계류의 품질저하, 수입유발이 주요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열처리 산업의 수익성이 지난 1980년대 중반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후는 내리막길을 걷는 추세라고 지적한다. 허약한 산업기반과 별개로 열처리용 특수시설의 투자비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풍력발전기의 대형기어는 직경이 3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러한 대형부품을 구웠다가 식히려면 줄잡아 10억원대 이상의 열처리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투자비용과 함께 열처리에 필요한 전기, 가스비의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열처리를 담당할 전문인력의 노령화와 부족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더운 열기로 휩싸인 공장환경은 대체로 열악해서 전형적인 굴뚝산업으로 분류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수익성이 낮고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는 열처리 업종에 좀처럼 취업하지 않는다. 열처리 기술인력의 부족은 기계부품 수입을 촉진하고 한발 나아가 기계 제조업을 포기하는, 부품제조산업의 기술공동화를 우려할 단계에 이르렀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제조업 기피 현상, 핵가족 시대의 개인주의는 모두 열처리 산업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결국 국내에서 열처리 산업은 제조원가가 낮은 중국, 인도, 동남아 국가로 속속 이전하는 상황이다.



<정부의 지원방안>

 열처리는 금속소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산업적 중요성에 비해서 국내 기반환경이 아직도 취약한 상황이다. 정부는 우선 열처리 분야에 우수한 젊은 인력들이 모이도록 인재양성에 노력해야 한다. 열처리 업계에서 기능인력은 갈수록 고령화되는데 청년들의 현장 업무기피로 인력수급에 애로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업기반 보호를 위한 전공을 불문하고 열처리 분야 실무인력을 양성하는 단기교과과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윤호 동우열처리 연구원은 “요즘은 열처리 분야에 지식을 갖춘 석사급 인력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에서 열처리 분야를 국가기간산업으로 인식하고 병역특례와 같은 혜택을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심한 열처리 업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 지원도 필요하다. 열처리 업계는 전기료 및 가스비 상승과 주말휴무제의 도입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누진방식으로 적용되는 전기요금은 부담이 커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해 저마찰계수의 표면처리와 같은 첨단 열처리 기술개발에 국가 차원의 대규모 R&D 프로젝트도 재개할 필요가 있다. 전기료, 가스비와 같은 에너지비용 상승에 따라 효율이 높은 설비 및 공정개발이 필요한데 민간의 힘만으로 이를 추진하기가 역부족이란 설명이다. 일본과 독일은 산업 현장의 열처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전문인력풀을 만들어서 고용안전성을 높이고 있다.

 경영 측면에서 2세들이 기업계승을 기피하면서 내부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성향도 늘고 있다. 열처리 업체의 대형화는 숙련된 열처리 기술자의 부족 현상을 극복하는 데 효과적인 대안이다.

 전문가들은 판재를 비롯한 일부 열처리 기술은 일본보다 앞서기 때문에 최근 자동차 산업의 구조변화에 발맞춰 국내기업들이 구조변화를 서두르면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열처리 업계는 전통제조업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정부가 실질적 도움을 주기 바라고 있다. 케이에이치티의 한 관계자는 “열처리를 기계장비의 품질, 내구성을 좌우하는 그린생산기술의 관점으로 바꾸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여지가 무한하다. 정부가 열처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