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무사고 운전자였던 회사원 박지훈(가명.51.용산구 후암동) 씨는 지난 6월 평생 처음으로 접촉사고를 냈다.
자가용을 몰고 퇴근하던중 DMB(이동멀티미디어방송)를 통해 월드컵축구 아시아예선 생중계를 보다 한박자 늦게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교차로에 멈춰서있던 앞 차를 추돌한 것이다. 박 씨는 이후 DMB 내비게이션을 아예 차에서 떼어냈다.
그는 “평소 굉장히 주의해서 운전하는 편인데 관심있는 스포츠 경기를 중계할 때에는 DMB를 보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면서 “사고후 이러다 진짜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 싶어 아예 내비게이션을 제거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절반은 DMB 단말기 장착”=운전을 하다 보면 주위에서 내비게이션으로 방송을 시청하거나 영화를 보며 운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직장인 정창영(34)씨는 “횡단보도 등에서 정차된 옆 차를 보면 DMB로 방송을 보고 있는 운전자가 많다”면서 “옆에서 보기에도 아슬아슬해 되도록 떨어져서 운전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차에 DMB 단말기가 설치돼 있을까? 한국전파진흥협회와 위성DMB 사업자 TU미디어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위성 DMB가입자는 201만명으로 이 중 5% 정도인 10만명이 차량에서 위성DMB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상파 DMB 단말기의 경우 2005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6월 말 현재까지 2천155만대가 팔렸으며 이 중 607만여대가 차량 탑재용이다. 구형 단말기를 신형으로 바꾼 경우가 일부 있어 실제 차량에 장착된 단말기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차량 2대 중 1대 꼴로 DMB를 설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상파DMB 사업자들의 협의체인 지상파DMB특위 이희주 부장은 “전파진흥협회 조사는 군소 DMB단말기 판매업체의 통계를 누락하고 있다”면서 “특위가 설문조사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 DMB단말기 설치 차량은 800만대 안팎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1천700만대를 갓 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도로에 돌아다니는 차량 2대 중 1대 가까이에 DMB단말기가 설치돼 있는 셈이다.
◇“음주운전보다 위험하다”=언뜻 생각하기에도 운전중 DMB 시청은 꽤 위험스럽게 느껴지지만 어느 정도인지 체감하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별 생각없이 DMB를 켜놓고 운전하고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06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운전중 DMB시청은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수치의 음주운전보다도 위험하다. 편도 2차로 총연장 6㎞ 구간에 대한 모의주행 결과, 전방주시율은 정상주행 때 76.5%였지만 DMB를 시청할 때엔 50.3%까지 떨어졌다.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1%시 전방주시율은 72%였다.
좌우 치우침도 DMB를 시청할 때 1.28m로 정상주행(1.0m)시보다 훨씬 컸고 혈중알코올농도 0.1%일 때(1.32m)와 비슷했다. 장애물 피하기, 급제동 등 위험회피실험에서도 반응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데도 DMB시청으로 인한 사고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현재로선 운전중 DMB시청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나 보험회사에서 따로 조사하지 않는데다 운전자가 불이익을 염려해 DMB시청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 박사는 “운전의 첫 단계는 정보 확인에 있는데 DMB시청은 이를 방해해 사고로 이어질 위험을 크게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운전중 DMB시청을 금지하는 곳이 적지 않다. 우리보다 DMB 보급이 늦은 일본과 영국, 호주, 미국 등이다. 특히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DMB 겸용 네비게이션을 자동차에 장착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곳도 있다.
그나마 서울시가 택시기사가 주행 중 TV나 DMB를 시청할 경우 과징금을 물려오던 것도 최근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어긋난다며 위법 판결이 나 과징금 부과가 불가능해졌다.
음주운전보다 위험한 ‘DMB 운전’이지만 규제 법안은 전무한 것이다.
◇‘운전중 DMB시청 금지법’ 발의…“기술적 통제 가능”=운전중 DMB시청 규제 법제화 논의는 2005년 12월 지상파DMB가 상용화되기 전부터 있어왔다.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이 2005년 ‘운전중 DMB 시청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DMB산업의 경쟁력을 잃는다’는 DMB 관련업계의 반발에 경찰마저 ‘단속이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하면서 법안 통과가 무산됐다.
이 같은 공방은 4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하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지난달 13일 운전중 DMB시청을 금지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상파DMB특위의 이희주 부장은 “운전중에 DMB를 시청하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운전중 DMB시청을 막는 것은 법으로 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캠페인 등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일”이라고 법제화에 반대했다.
경찰은 DMB시청이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기는 하지만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신중한 반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차 앞 쪽에서는 DMB를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고 로그인 기록도 남지않아 DMB 시청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게 사실”이라며 “법제화만으로도 DMB시청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면밀히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법제화가 이루어지면 기술적으로 운전중 DMB 시청을 막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도 자동차 출고 때 장착돼 나오는 내장형 DMB겸용 내비게이션의 경우 시속 5㎞가 넘으면 자동으로 꺼지도록 돼 있는 경우가 많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외장형도 기술적으로 일정 속도가 넘으면 자동적으로 꺼지게 제작할 수 있다”면서 “이미 판매된 제품도 지도를 다운받을 때 관련 프로그램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