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낙엽 하나 감상할 여유도 없이 어느덧 코끝 시린 겨울로 접어들었다. 미처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지 못했다면, 떠나가는 가을의 흔적들을 담은 영상으로 마음을 달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을 거리는 낙엽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 한 잎 한 잎이 가을 거리를 수놓는다. 가을 계곡의 유유한 물길 따라 낙엽도 흐른다. 붉게 물든 것, 아직 덜 물든 것,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것. 가을 낙엽은 그 자체로 자연의 팔레트다. 푸르던 잎과 줄기가 바짝 말라 누런색으로 변한 들판의 억새, 힘을 줘 억새를 꺾을 손 치면 탁 소리를 내며 끊어질 것 같다. 가을 억새는 모든 것을 비우고, 자연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도가(道家) 스승들이다. 촘촘한 솜털 하나까지도 바람결에 모두 맡긴 억새들은 우리에게 공(空)을 가르쳐 준다. 어느새 나뭇가지 위 겨울 철새들은 마냥 반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