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27억달러(약 3조1200억원)를 들여 스리콤을 인수한다. 통신과 컴퓨팅 융합 시장을 놓고 HP와 시스코시스템스이 정면 충돌하게 됐다.
정보기술(IT) 백화점을 꾸리려는 HP가 통신망 장비업체 스리콤을 사들이기로 합의했다고 로이터·월스트리트저널 등이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HP는 이날 스리콤 미국 주식시장 종가인 5.18달러보다 53%나 많은 7.90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웃돈을 얹어줄 만큼 HP의 통신망 장비 시장공략 의지가 강한 것으로 읽혔다.
인수 가격에는 스리콤의 부채도 포함됐다. 두 회사는 각각 이사회 의결을 거쳐 내년 상반기에 인수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HP가 스리콤을 통해 통신망 장비 분야로 기술·사업 지평을 넓히면, 당장 시장에서 시스코시스템스와 충돌할 전망이다. 시스코시스템스의 핵심 사업인 라우팅과 스위칭 분야를 직접 겨냥한 인수로 분석됐다.
데이브 도나텔리 HP 기업서버네트워킹그룹 수석부사장은 “기업(고객)들은 (시스코와 같은) 독점적 공급업자가 지배하는 네트워킹 패러다임에 따라 강제되는 사업적 한계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는다”고 말하며 시스코를 향해 선전 포고했다.
통신망 장비 시장에서 여전히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는 시스코시스템스의 역공도 거세다. 지난주 EMC, VM웨어와 함께 ‘아카디아(Arcadia)’를 만든 뒤 인터넷과 데이터센터를 이용해 복합 IT 제품을 판매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HP 사업 영역에 발을 깊이 들여놓았다.
한편, 델이 지난 9월 IT 서비스 회사인 페롯시스템스를 인수하는 등 IT 산업의 거인들이 인수·동맹을 바탕으로 경쟁적으로 체중을 불리기 시작했다. 특히 서로 상대방의 텃밭을 서슴없이 잠식할 태세여서 더욱 주목된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