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시스코시스템스 등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씨름판에 나선 거인들이 체중을 불려가며 상대방 샅바를 바싹 틀어쥐기 시작했다. 통신으로부터 컴퓨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상대방 장기를 피하지 않고 되레 맞받아쳤다.
11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전해진 HP의 스리콤 인수 소식은 시스코를 향한 전면전 선언으로 풀이된다.
시스코가 지난주 EMC·VM웨어와 함께 일종의 ‘클라우드 컴퓨팅 동맹’을 맺으면서 촉발한 선전포고에 HP가 반격한 셈이다. 통신망장비업계 거두인 시스코가 컴퓨팅 시장을 넘보자, 그곳 거인 HP가 통신장비업체 스리콤을 사려고 27억달러(약 3조1200억원)을 들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시스코·EMC·VM웨어 동맹의 ‘브이블록(vBlock)’은 통신망장비·서버·스토리지(storage)를 묶은 클라우드 컴퓨팅 제품을 내세워 HP 전문 영역을 침범했다. 시스코는 이에 앞서 무선 통신장비업체 스타렌트네트웍스를 29억달러(약 3조3900억원)에, 영상회의솔루션업체 탠드버그를 29억8000만달러(약 3조51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하는 등 통신장비시장 방어를 위한 체중 불리기에도 힘쓰고 있다.
HP도 이번 공격(시스콤 인수)을 준비하기 전에 방어 체계를 다졌다. 지난해 기업 가치가 139억달러에 달하는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EDB)을 인수해 IT 서비스 분야 전열을 정비해둔 상태다.
HP와 시스코의 공격·방어가 모래판(시장)에 어떤 형세를 그릴지 주목되는 가운데 IBM, 델, 오라클 등 주변 씨름꾼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된다.
오라클이 74억달러에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뒤 통신 판에 뛰어들지, 델이 39억달러를 들여 페롯시스템스를 사들인 뒤 어느 업체를 호시탐탐하는지 시선이 모인 것이다. 특히 시스코와 통신망 장비 분야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또 다른 맹주 IBM의 선택도 세계 ICT 씨름판 흐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분간 세계 ICT 판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됐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