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오해가 있다. 슈퍼컴퓨터가 기상장비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을 때마다 예보 능력에 대한 지적과 함께 우리나라 슈퍼컴퓨터에 대한 불신 및 무용론이 나온다. 날씨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컴퓨터가 무슨 슈퍼컴퓨터인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그 효율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슈퍼컴퓨터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슈퍼컴퓨터는 21세기 국가 최고의 지식기반 인프라다. 슈퍼컴퓨터가 최고의 과학기술 인프라라는 것은 융합IT 모두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슈퍼컴퓨터는 뇌의 충격예측, 항체 세균 간의 메커니즘, 게놈을 통한 유전병 구명과 같은 생명공학은 물론이고 지구시스템 분석, 수질개선 시뮬레이션, 기상재난 조기예측과 같은 지구과학 분야에 고도의 예측력을 제공하고 있다. 대규모 영화 CG 제작, 명화 및 고전작품 복원, 고대 예술을 실현하는 가상 고고학 및 미래형 디지털 도서관 등 문화예술 분야의 기술력 제공과 함께 자동차 설계, 신소재 개발과 같은 고정밀 기술 강화, 행성 찾기, 우주탐사 등 초대규모 프로젝트의 신뢰성 있는 데이터 계측 등 융합IT 부문과 전방위적으로 연계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슈퍼컴퓨터 보유 및 운용은 미흡하다 못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현재 국내 슈퍼컴퓨터 중 세계 500위권에 드는 장비가 2009년 6월 기준으로 단 한 대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우리나라는 2001년 세계 톱 500위권 내 슈퍼컴퓨터 중 16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보유비율은 3.2%로 세계 6위권을 위치하고 있었다. 슈퍼컴퓨터에 대한 좁은 시각과 오해, 효과적인 운용계획 부재, 장기적 융합비전의 미비, 슈퍼컴 관련 일자리 창출의 지체와 고급인력의 해외유출 등이 맞물려 5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슈퍼컴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슈퍼컴퓨터 보유 부족은 과학기술의 위기이자 국가경쟁력에 대한 심각한 경고음이다. 지금이라도 슈퍼컴퓨터 전략 프로젝트를 구성해야 한다. 단, 유의할 점은 슈퍼컴퓨터를 특정 ‘기술’에 국한된 일종의 ‘진흥정책’이나 또 다른 ‘위원회’ 만들기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래 슈퍼컴퓨터 전략은 앞서 언급한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곧 슈퍼컴퓨터를 ‘국정 IT융합 브레인’으로 인식해야 한다. 국정 차원에서 첨단 과학기술과 지식정보를 접목해 금융·경제·행정·군사·에너지·교육·국토개발 전반에 슈퍼컴퓨터를 활용해야 한다. 국제금융의 흐름과 외환시장의 추이에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다차원적인 리스크 감지 및 투자 포인트를 산출해야 한다. 산업·기술별 성장이나 쇠퇴 시나리오를 슈퍼컴에 투입, 계측해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경제 부문을 구성할 수도 있다. 아울러 행정 전반의 인력·정책·예산 흐름을 슈퍼컴을 통해 포착하면 효율적인 자원배치가 가능하며, 슈퍼컴 기반의 군사 대응 및 에너지 개척체제를 구축, 위기대응의 확률과 자원발견의 기회를 증진시킬 수 있다.
현재 슈퍼컴 보유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중국이 독과점하고 있다. 이들의 보유비율은 전체 국가 대비 80%를 상회한다. 우리나라가 이들과 견주려면 단순히 슈퍼컴 몇 대를 들여오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 IT융합 브레인’으로서 슈퍼컴퓨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국정 전반에 슈퍼컴 기술능력을 침투시키는 융합체제를 구성해야 한다. 다르게 바라보고 신속하게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놓인 마지막 선택지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영선 국회 정무위원장 auto38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