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신임원장에 김흥남 박사가 선임됐다. 그동안 원장 선임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잡음이 들렸으나, 산업기술연구회가 ETRI에서 잔뼈가 굵은 김흥남 박사를 선택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임베디드 SW 전문가 김흥남 신임원장은 이제 기관장 선임과정에서 드러난 연구소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고, 정부출연연 본연의 업무를 재정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ETRI는 그간 IT 부문의 거대 국가 프로젝트를 주도해왔다. 전전자 교환기 개발부터 반도체, CDMA까지 국가 기간 동력산업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연구집단이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여년간 ETRI는 대한민국 IT혁명의 선두주자였다. ETRI가 개발한 기술은 오늘날 IT기업의 자양분이 됐다. 1년에 65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거대 조직이 됐지만 최근 10년여간 내로라할 만한 연구프로젝트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연구소는 국가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품 응용기술에 치중해 기업연구소와 경쟁했다. 기초원천기술에 매달리기보다는 성과 올리기 쉬운 응용과제에 매진했다. 정부출연연 설립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ETRI는 지금 개혁 시험대에 올라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출연연으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의 ETRI가 정도에서 벗어나 이 때문에 대한민국 IT산업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뼈저린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김흥남 호의 출발은 ETRI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는 일이어야 한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과 대형 연구과제가 사라지는 ‘정치성향’도 뿌리 뽑아야 한다.
ETRI가 아름다울 때는 대한민국 IT 흐름을 주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창출할 때였다. 쉬운 응용기술은 이제 기업에 돌려주고 적어도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연구실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김흥남호의 숙제이자 연구원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