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R&D는 지금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선택과 포기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
17일 정부 출연연구기관 거버넌스(지배구조) 체제 개편의 중심에 서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신임 원장으로 선정된 김흥남 ETRI SW콘텐츠연구부문 연구위원은 출연연뿐만 아니라 국가 R&D의 화두로 ‘선택과 포기’를 꼽았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어간 과제라도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에는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이다. ETRI 연구 분야의 변화가 예고되는 부분이다. 김 신임 원장은 기관 운영을 놓고 일본의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나 대만의 ITRI도 거론했지만 독일의 연구회 시스템에 관심을 나타냈다.
“평가 시스템이 우리나라는 복잡한 중층 구조로 돼 있지만 독일은 단순합니다. 연구자들이 작은 규모로 과제를 시작하도록 예산을 지원한 뒤 나중에 민간펀딩이 들어오면 그만큼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주는 방식입니다.” 수익 논리로 움직이는 민간기업 자체가 가장 확실한 평가시스템이라는 시각이다.
조직개편에도 일견 수긍했다. 현 시스템으로는 변화하는 융합 분위기에 따른 기관 간 연구인력의 유동성을 확보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조직 개편이 내부의 연구분위기 훼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면서 나름대로의 선을 그었다.
ETRI 장기근속자 재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미국 MIT에서 MBA를 1년간 수료한 뒤 지난 8월 귀국한 김 신임 원장은 나름대로 경영수완을 위한 이론적인 토대는 확보했다. 단순 R&D맨은 이제 아닌 셈이다.
성격이 세심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한 번 일을 잡으면 완벽할 때까지 뿌리를 뽑는 스타일이다. 이번 기관장 공모에서도 산업기술연구회에 지원서를 제출하기 전 10회 정도 들여다보며 수정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좌우명은 ‘진인사이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한 뒤 하늘의 뜻에 따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번 한 일에는 미련이 없다. 대인관계가 좋기로 소문난 김 신임 원장은 내부에서 옛 시스템공학연구소(SERI)를 비롯한 임베디드SW연구단을 중심으로 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김 신임 원장은 대구 경북고 출신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 미국 볼스테이트대학에서 전산전공으로 석사, 199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전산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해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와 ETRI에서 임베디드SW 연구단장을 비롯해 한국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 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스마트그리드 TF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