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국제특허질서, 한국이 만들자](https://img.etnews.com/photonews/0911/091119113527_1404580189_b.jpg)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내년 11월 한국에서 열린다. G20 회의는 참여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GDP의 85%에 달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지구촌 최대 규모의 정상급 국제회의라 할 수 있다. G7에서 G20으로 정상회의 규모가 확대된 것은 국제경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과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국가를 제외하고는 금융 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 공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종전의 특허 3극 체제(미·일·유럽)가 세계 특허 중 약 80%를 차지하는 지재권 선진 5개국(IP5, 미·일·유럽·한·중) 체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세계 4위 국제특허출원 국가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에 등록된 한국의 특허는 1988년 96건(당해연도)에서 20여년 만인 지난해 8731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국제특허질서의 판을 새로 짜기 위한 IP5 국제협력이 G20의 태동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 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지난해 제주에서 개최된 IP5 회의를 통해 IP5 체제 출범에 기여했다. 여기에다 사실상 실무협력 체제인 IP5 특허 심사관 워크숍 역시 올해 10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가 세계경제질서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IP5 출범 초기부터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은 글로벌 특허 이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는 세계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식기반 경제의 국가경쟁력, 좀 더 좁게 표현하면 특허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하곤 했다. 기업에서 15년간 연구개발을 담당했고, 과학기술처 장관 및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해양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생명공학연구원 설립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기술입국 실현을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았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다. 우리의 유일한 자원은 국민의 뛰어난 머리며 두뇌 자원의 전문적 활용의 집합체가 바로 특허기 때문이다.
특허경쟁력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우수한 발명이 다른 나라에서도 손쉽게 특허 받을 수 있는 국제 특허 시스템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IP5의 활용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지구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유지들이 모여 글로벌 특허 이슈들을 논의하고 결정함으로써 특허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국제특허질서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협력은 백번의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중요하다. 후속조치 없는 국제협력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IP5를 정착시키려면 각국의 실무자들이 선의의 경쟁을 거쳐 서로 배우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개최된 ‘제1회 IP5 심사관 워크숍은 지난해 출범한 IP5 체제의 구체적인 실천이자 유용성을 확인하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와 올해를 거치며 미래 국제특허질서의 중심축이 될 IP5의 선봉에 우뚝 서 있다. 이미 반은 이룬 셈이다. 한국을 중심으로 한 IP5 체제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우리나라의 특허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국제특허질서가 형성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이상희 대한변리사회장(kpaa@kpa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