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속에서부터 껍데기까지 모두 바꿨습니다.”
한 분야에 능통한 사람을 달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한계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애써 즐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후퇴도 서슴지 않는다.
낯선 스마트폰의 이미지를 친숙함으로 바꾼 옴니아2의 달인 삼성전자 ‘디자인그룹’. 최근 찾아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3층 회의실에는 4명의 연구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밝은 표정과 자유로운 복장이 말해주듯 다양성과 창의성이 존중받는 곳답다는 첫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이 어렵다는 인식이 너무 강해서 어떻게든 쓰기 쉽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했습니다.”
김병주 책임연구원(디자인그룹 소속)의 표정에는 글로벌 톱 브랜드를 향한 도전적인 자부심이 묻어났다.
◇“스마트폰의 경계를 허물다”=삼성전자 디자인그룹이 옴니아2의 UX를 개발하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사용 편의성이었다. 소비자가 옴니아2를 사용할 때 기존의 햅틱과 별 차이 없게 만드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옴니아2는 MS 윈도모바일 위에 햅틱UI를 덮은 2중 구조로 설계됐다. 윈도모바일은 비즈니스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탑재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인터페이스가 너무 다르고 화면에 나타나는 텍스트 역시 깨알 같았다. 호환성이 문제였다.
밤을 새는 것은 일상이다. 각각의 툴을 키우고 애플리케이션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반복을 거듭했다. 여기에 기능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게 가능하도록 해야만 했다.
“소비자들이 설명서를 보지 않고도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햅틱폰을 사용하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존의 스마트폰 장벽을 무너트리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지요.”
김 책임연구원은 그간의 어려움을 ‘장벽 무너트리기’라는 말로 대신했다.
◇무모한 도전의 ‘성공 스토리’=디자인그룹은 윈도모바일에 햅틱UI를 덮는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구매해온 운용체계(OS)에 몇 가지 기능을 얹어서 제품을 출시했던 인력으로 이번 옴니아2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출시된 1세대 옴니아는 윈도모바일에 햅틱UI를 모두 덮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1세대 옴니아가 파워유저 모니터링에서 갖은 비난을 받았다면 2세대 옴니아는 칭찬일색이었다. ‘써보니 괜찮더라’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김정효 책임연구원은 “1세대 옴니아가 절반의 성공이었다면 옴니아2는 윈도모바일을 100% 햅틱UI로 덮어씌운 완벽한 스마트폰”이라고 설명했다.
옴니아2에는 사용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디자이너의 치열함이 숨어 있다. 외부 행거스트립 위치와 구멍의 수를 결정짓기 위해 HW 부서와 잦은 의견충돌도 서슴지 않는다. 손에 쉽게 잡힐 수 있도록 네모 모양의 휴대폰을 둥근 원형으로 만드는 작업도 관철시켰다.
이민혁 수석연구원은 “휴대폰 내부에 들어가는 배터리, CPU 등은 모두 네모 모양이어서 외관도 같은 모양으로 만들면 공간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며 “버튼의 위치와 휴대폰 윤곽 등 옴니아2는 디자이너의 내공이 숨어있는 종합선물세트”라고 말했다.
◇“보는 휴대폰의 끝 없는 확장성”=최근 김정효 책임연구원 앞으로 한통의 e메일이 날아왔다. 대구지점에서 보내온 것으로 대구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옴니아2 소비자인데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볼륨키를 엔터키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대리운전은 콜을 빨리 잡는 사람이 수입을 더 많이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버튼기능을 수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 연구원은 생계형 VOC(고객의 소리)라고 판단, 수원사업장 개발팀을 통해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제품을 대구지점으로 보내줬다.
김 연구원은 “스마트폰의 활용도가 높다는 것은 알았지만 옴니아2가 생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옴니아2는 윤선생 영어교실의 선생님들 수업지도, 진도확인, 점수, 학생태도 등의 기록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로 5.8㎝, 세로 11.7㎝ 크기의 한 뼘도 안 되는 제품 속에서 ‘한 뼘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디자인그룹. 2년여에 걸친 노력과 조직력이 회사의 경쟁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김동석기자 d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