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송 사업자와 통신 사업자가 주파수 재배치 문제를 두고 격돌했다.
무선통신연합회(CTIA)는 지난주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서한을 보내 현재 상업 용도로 사용 중인 3㎓ 이하 대역의 주파수를 재배치해 무선인터넷용 대역폭을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CTIA는 서한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주파수 스펙트럼은 기술과 시장의 변화를 담지 못할 뿐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돼 있는 구조”라고 지적하고 “날로 급증하고 있는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3㎓ 이하의 주파수를 전면 재배치해 달라”고 주장했다.
CTIA는 3㎓ 이하 대역의 주파수 이용 현황과 해외 사례, 향후 무선인터넷용으로 필요한 주파수 수요 전망 등 세세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까지 함께 제출했다. 특히 이들은 우선 재배치할 대상으로 방송사가 사용 중인 800㎒를 지목했다. CTIA는 “당국은 현재 방송사가 사용 중인 주파수의 효율적 사용 여부를 면밀히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이를 규정한 통신법 조항(섹션 336g)을 근거로 들어 평가 작업에 조속히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또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국경을 넘어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근접한 700∼800㎒를 무선인터넷용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CTIA의 이번 서한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율리우스 게나촙스키 FCC 위원장이 주파수 부족 위기를 경고하면서 주파수 재배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 서한은 FCC 위원장의 발언에 힘을 실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체적인 정책을 끌어내겠다는 CTIA의 전략이 숨어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방송사들의 모임인 전미방송협회(NAB)는 발끈하고 나섰다. NAB 역시 FCC에 공식 서한을 보내 “방송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주파수를 이통사들에 넘겨주려는 계획이 있는지 밝히라”며 “그런 의도가 있다면 즉각 중단하라”고 항의했다.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에 사용했던 700㎒ 주파수를 디지털 전환 이후 통신사들에 경매로 재배치한 것도 모자라 800㎒까지 넘겨주려 한다는 지적이다. 방송사들은 게나촙스키 FCC 위원장의 발언을 일련의 수순을 밟기 위한 것으로 평가했다.
700∼900㎒ 사이의 저주파 대역 주파수는 효율성이 좋고 투자비가 적어 각국이 양질의 서비스를 위해 재배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당초에는 VHF·UHF 지상파 방송용으로 사용됐지만 디지털 방송 기술이 도입되고, 와이맥스나 롱텀에벌루션(LTE) 같은 대용량 무선인터넷 기술이 개발되면서 주파수 스펙트럼을 다시 짜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FCC는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논란이 확대되자 진화에 나섰다. FCC의 브로드밴드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블레어 레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검토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FCC가 조만간 밑그림을 내놓을 것으로 내다봤다. 스티플 니콜라우스의 레베카 아르보게스트 애널리스트는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방송 주파수의 점검 작업은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