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를 거부하는 미중년, 꽃중년이 인기다. ‘중년’은 쇠락과 퇴장이 아니라 원숙과 도약이다. 어린 남성들의 어설픔보다 중후한 중년이 고급스럽다. 돈만 있는 게 아니라 연륜도 있다. 반올림해서 마흔일 때는 불안하고 우울했는데 그냥 마흔이 넘고 보니 당당하고 자랑스럽다. 중년은 초월해서 초연하다.
물론 중년이 화려하지만은 않다. 출장 다녀왔더니 이혼장 날아와 있고 아내는 점점 기운만 세져서 무섭기까지 하다. 아무리 쉬어도 피곤이 풀리지 않고, 약기운이 있어야 하루를 버틴다. 모른다고도 못 하겠고 두렵다고도 못 하겠는 나이여서 늘 선봉장이 되고 늘 가면을 쓴다. 직장에서의 고달픔을 집에서 얘기하지 않고 집에서 부부싸움한 걸 직장 와서 티내지 않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처럼 고독하고 쓸쓸하다. 내가 진정 누구고 내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체성을 잊었고, 유체이탈한 내부분열을 폭탄주로 달랜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인데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타인만 속이는 게 아니라 자기자신마저 속인다. 스스로 불편한 부분까지 서슴없이 인정하고 개선을 위한 시도를 해야 나를 찾는다. “뭐, 이 나이가 돼가지고, 나이 값을 해야지. 요즘 것들은 안 돼. 난 지금 내가 좋아”라며 호기 부리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도하자. 오늘의 내가 여지껏으로 보면 가장 늙었기도 하지만 앞으로를 보면 가장 젊은 때기도 하다. 마사지도 받고, 딸이 골라준 레이어드룩도 걸치고, 포켓치프도 꽂아보자. 멋을 찾고 즐기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출발이다. 중년의 따뜻한 이성과 논리적 감성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가꿀 때 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