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몇몇 백화점에는 아내가 쇼핑하는 동안 남편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남편들을 위한 의자’가 놓여 있다. 그 의자에는 ‘피곤에 지친 남편들을 위한 자리(tired husband’s bench)’라고 적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은 쇼핑하기 피곤해 하고 여성은 그만큼 피곤하게 오랫동안 쇼핑하나보다. 남편은 쇼핑을 같이 가면 입이 산만큼 나와서 이내 못 참고는 “그만 사고 가자. 그거 산다고 안 그랬잖아?”라며 딴지를 놓다가 결국은 “다 사면 불러, 차 안에서 자고 있을게”라며 주차장으로 간다.
남성의 쇼핑이 무엇을 잡을지 결정하는 사냥 같다면 여성의 쇼핑은 어떻게 키울지를 고민하는 육아 같다. 남성은 구두 사러 왔으면 4층 가서 구두 사고 나오는데 여성은 구두 사러 왔어도 1층부터 훑어보다 스카프를 구경하기도 하고 아이 옷을 사기도 한다. 이것이 남녀의 차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위로가 되기도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내 남편의 애정 문제가 아니라 남녀의 근본적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용서도 되고 용납도 된다.
반면에 너무 남녀의 차이가 일반화되다 보니 모든 남성과 모든 여성을 싸잡아 묘사할 때가 있다. 이것은 성 고정관념을 심화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진보의 끝은 개별성이다. 사람마다 각자 다르고 개성마다 정도도 다르다. 남녀의 차이로 사람을 나누는 것은 이 세상을 키 작은 사람과 키 큰 사람으로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거칠고 단순하다. 이 위험성을 염두에 두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발로로 사용해야 하는데 서로를 고정화시키는 딱지 매김용으로 쓴다면 말리고 싶다. 이것은 서로를 옭아매고 서로를 옥죈다. ‘남자는 모름지기’라느니 ‘여자가 돼가지고’ 등의 딱지가 붙으면 서로 혀를 끌끌 차고, 노골적인 적의만 표하게 될 뿐이다. 차이를 아는 것은 존중하기 위한 것이지 패를 가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차이는 인정하고 배려하되 차별에는 인식하고 항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