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정보기술(IT) 업계를 향해 구애의 눈빛을 보냈다. 정부는 IT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기업이 세종시에만 오면 국가 보조금 지원에 취득세, 등록세 면제 등 각종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학과 연구소를 연결해 소프트웨어 클러스터까지 만들겠다고 했다. 혹할 만한데 정작 업계는 시큰둥하다. 늘 흘겨 보다가 느닷없이 끈적끈적한 눈빛을 보낸다며 화를 내는 이도 있다. “언제는 몹쓸 존재로 여기더만….”
IT 산업을 보는 현 정부의 눈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글로벌 금융 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하는 데 IT의 힘이 컸던 덕분이다. 환율 덕을 봤다지만 반도체, LCD, 휴대폰, TV 등 IT 산업은 기록적인 수출로 외환 위기를 넘는 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 아무리 밉상일지라도 예쁜 짓을 많이 하면, 그것도 어려울 때 하면 없던 애정도 생긴다. 이명박 대통령이 IT 특보를 신설하고, 미래기획위원회가 IT 코리아 미래전략을 내놓은 것도 미처 몰랐던 IT 산업의 가치를 뒤늦게라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IT 산업계도 이젠 앙금을 씻을 때가 됐다. 세종시의 유혹도 IT를 깨끗한 첨단산업으로 인정한 것으로 봐도 좋겠다.
다만, 발상과 논리가 참 이상하다. 정부는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는 이유로 자족 기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 행정기관만 있는 유령 도시가 아니라 산업과 교육, 문화가 어우러져 생기 넘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시도다. 기업 유치로 현지 고용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잡겠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IT 기업인가, IT 서비스와 SW 기업의 주 고객은 기업이다. 수요 기업이 부르면 세종시가 아니라 포항, 여천, 강릉, 제주라도 어디든지 달려간다. 그런데 이런 기업더러 세종시에 먼저 가 터를 잡으라고 한다. 삶의 기반이 이미 수도권에 있는데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으로 회사가 옮겨간다면 따를 직원은 또 몇이나 될까. IT 기업 CEO들이 끌리는 세제 혜택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행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일부 IT 서비스 업체는 ‘갈 이유가 없지만 원격지 개발(고객과 떨어진 곳에서 개발을 수행하는 방식)을 정부가 법으로 허용해준다면 검토해볼 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원들이 어차피 타지 생활을 많이 하는 터라 세종시에 원격지 개발 센터를 둔다면 옮겨갈 수 있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이런 사항까지 미리 살폈는지 궁금하다.
IT 기업 유치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발상도 어이없다. IT 기업 종사자들은 상당수가 전문 연구직이다. 세종시 인근 대학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이도 있겠지만 수도권에 비해 풍부하지 않다. 현지 고용 창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생산 라인에 투입할 인력을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IT 제조업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IT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각지의 산업 클러스터에 있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구미, 창원, 천안, 파주 등 이미 형성된 산업 클러스터에 자리를 잡은 이 업체들은 텃밭을 떠나 굳이 세종시로 갈 이유가 없다. 멀쩡한 클러스터를 제쳐 두고 ‘세종시 블랙홀’만 만들었다며 지자체들도 야단이다. IT 기업을 세종시로 모시겠다는 정부 제안은 고맙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래서 업계의 대답은 ‘노 생큐’다.
신화수 취재담당 부국장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