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의 최대 이슈는 단연 ‘세종시’다. 정부와 정치계는 각자의 논리를 내세우며 기 싸움을 하고, 연구기관과 기업은 서로 눈치를 보며 갈지말지를 고민한다. 대통령까지 나서 세종시 계획 원안 수정을 놓고 대국민사과를 하는 형국이니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채롭기만(?) 하다. 출발부터 일관성 없는 도시 프로젝트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기도 한다.
이쯤에서 시선을 아시아의 중심에 있는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로 돌려보자. 싱가포르에서는 정부가 2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진행하고 있는 지역개발 프로젝트 ‘원노스(One North)’가 모래성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새로운 도시계획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싱가포르 ‘원노스’ 현장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모습이다.
◇원노스란=원노스는 ‘북위 1도’에 있는 싱가포르의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단어로 생명공학기술(BT), IT, 미디어가 공존하는 도시 속의 새로운 u시티를 지향한다. 이 지역은 과거 영국군의 주둔기지가 있던 곳이다. 인구 461만명(2008년 기준), 서울 면적의 약 1.17배(710.2㎢)에 불과한 나라지만 싱가포르는 2001년부터 시작한 원노스 프로젝트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보여줬다. 원노스는 불과 200만㎡이라는 작은 용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강력한 BT 산업 육성 의지에 힘입어 파이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노바티스를 비롯한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연구개발(R&D) 센터 유치에 성공했다. 기업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바이오R&D를 관장하는 과학기술청(에이스타) 산하 기관도 이곳에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바이오산업 인력 유치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으며, 해외 스타급 인사들을 수시로 초빙해 대학·연구소에서 교육을 주문하고 있다.
이기준 난양기술대학교 바이오공학과 교수는 “싱가포르는 10년 전부터 BT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면서 “정부가 회사를 운영하듯이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 실행, 많은 투자와 함께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학, 병원, 산업단지가 서로 기술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클러스터”라고 원노스를 소개했다.
◇특징은=원노스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단기가 아니라 장기적이며 순차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1단계(2001∼2010년), 2단계(2008∼2015년), 3단계(2012∼2020년)로 기간이 나뉘어 있고, 단계별로 실행과제도 정해져 있다.
1단계에서는 생물의학도시인 바이오폴리스가 성공적으로 구축됐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2단계에서는 IT와 미디어산업 중심도시인 퓨전폴리스 구축이 목표다. BT와 IT, 엔지니어링이 결합된 융합 연구를 추구한다.
원노스는 건설, 교통, 교육, 과학, 정보통신 등 다양한 정부부처가 관여하는 범정부 프로젝트다. 싱가포르 정부 산하 개발공사인 JTC코퍼레이션이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로 추진 중이다. 정부가 초기에는 인프라 구축과 공사를 담당하지만 자연스럽게 민간투자를 유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사무실, 상점, 호텔, 엔터테인먼트시설, 미디어광장 등 단순히 업무공간뿐만 아니라 이곳의 에너지를 모아, 도시의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미래형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원노스의 전 지역에서는 사용자가 마음대로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도 구축하고 있다. 곳곳에 고급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으며, 싱가포르국립대(NUS), 싱가포르 국립의료원, 사이언스 파크 등도 인접해 있어 교육과 의료, 공원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입주자들의 편리를 위해 지하철(MRT)이 다니며 일과 생활, 놀이가 조화를 이루는 복합 연구단지로 10만∼20만명의 둥지를 만들겠는 것이 원노스의 목표다.
로렌스 웡 교수는 “원노스에 있는 모든 건물에 IT인프라 구축은 필수”라면서 “통신 등의 인프라를 고려한다면 가장 현대화된 미디어·u시티의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시사점은=싱가포르는 과거 영국, 일본 등 열강의 지배를 받다가 1965년에 독립, 국가의 역사가 5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싱가포르는 무역, 금융 허브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은 탄탄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정부 주도하에 1980년대부터 IT산업 육성을 중점적으로 추진했으며 전자, 화학, 생명의료, 정밀기계 분야 기업들이 싱가포르에서 직접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인구가 500만명도 되지 않는 도시국가지만 아시아지역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구며 1인당 국민소득은 4만1291달러(2008년 기준, IMF 자료)로 세계 22위 수준이다. 이는 철저하게 정부 중심으로 이뤄지는 치밀한 국가계획과 산업육성책에서 비롯됐다. 일각에서는 부국의 아버지 ‘리콴유’와 그의 아들 ‘리센룽’이 수상으로 국가를 이끌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싱가포르는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박정희정권 시절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싱가포르가 전략산업인 BT, IT, 미디어의 테스트베드로 원노스라는 모험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곳에 외국의 기업·인재를 모아 자국의 열세를 극복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과 새로운 지식경제 형성을 꿈꾸고 있다. 또 지금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기업들도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는 당근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또 바뀔, 몇 시간이면 만들어내는, 안이 나올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우리의 세종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기에 우리는 더더욱 싱가포르의 원노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기준 교수는 “싱가포르의 최대 장점은 수상의 리더십과 정부의 일관된 추진력”이라면서 “한국 정권의 임기가 5년에 불과하다는 것을 싱가포르 현지인에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장기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고 말했다.
이곳을 나오면서 2020년이면 대단원의 막을 내릴 원노스 프로젝트가 앞으로 싱가포르를 어떤 모습으로 바꿀지 벌써 궁금해졌다.
싱가포르=설성인기자 siseo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