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방콕’으로 잠수타는 분들이 있다. 방에 콕 처박혀서 치킨과 캔맥주를 갖춰놓고 DVD를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휴대폰에 최근 발수신 번호가 몇 개 안 되는 인간관계라서 불러주는 데가 없다면 그건 지지리 궁상이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에 각종 송년 모임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도 피곤하겠지만, 달랑 한장 남은 달력마저 썰렁하고 밋밋하다면 그것 또한 섭섭한 일이다. 불러주지 않으면 직접 만들어보자. 작지만 따뜻한 송년모임을 구상하고 잊고 지낸 그들과 만나보자. 연말이라 얼굴 한번 보자고 말하기도 좋지 않은가.
오랜만에 만난 송년 모임에서도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 첫째, 술자리 매너다. 아무리 한약을 먹는 중이어도 첫 잔은 받아두자. 첫 잔마저 거절하면 이 자리를 꺼리는 것은 아닌지 오해를 살 수 있다. 술 끊었다고 정색을 하면 상대는 김이 빠진다. 오랜만에 만난 어색함을 달래는 윤활유니 받아놓고 안 마시더라도 첫잔은 받자. 자꾸 권하면 지방간 수치 증대, 손떨림 증세, 역류성 식도염, 고지혈증 등 종합병동같은 건강상 문제를 하소연하면 비켜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건배 매너다. 술은 먹고 죽자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기 위한 매개고리다. 다사다난했던 1년을 격려하고 함께 축복하는 자리인 만큼 의미 있는 건배사 하나쯤은 준비해두자. 나는 사칙연산 건배사와 4차원 건배사를 좋아한다. 사칙연산 건배사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에 적절한 단어를 끼워 맞춰 “사랑은 더하고 두려움은 빼고 성공은 곱하고 우정은 나누자”등으로 한다. 4차원 건배사는 “높고, 깊고, 넓고, 길게”라는 네 가지 구호를 활용한다. “이상은 높고, 사랑은 깊고, 마음은 넓고, 의리는 길게”처럼 말이다. 함께 외친 건배는 서로를 북돋고 분위기를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