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전환기의 IT 외교철학

[ET단상] 전환기의 IT 외교철학

 내년,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는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신국제 경제질서 재편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졌음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중국 언론이 “시간이 지나면서 선진국들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 보도한 것은 그들도 동 명제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는 의미다. 전환기 대한민국이 다방면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할 의무를 재확인하는 대목이다.

 최근 UNDP 한국사무소 폐지, OECD의 원조공여국(DAC) 회원국 가입을 앞둔 지금, 이 같은 ‘대한민국의 역할변화론’을 화두로 해 우리 IT 외교활동의 현주소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라는 표준화 국제기구 활동을 중심으로 점검해보자.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일본을 ‘경제적 동물’이라 경멸했으나 이제는 우리가 ITU-T, ITU-R에서 수출에 도움 되는 기기의 표준 활동만을 지원하고, 정책표준에 해당하는 ITU-D 활동은 정부관할의 사각지대에 속해 전문가 활동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한국 의장단 수만 보더라도, ITU-T에는 29명(일본 43, 중국 28)이지만, ITU-D에는 전무하다(일본 3, 중국 3). 개도국들은 우리의 IT 성공모델을 더 알고 싶어 하지만 기술정책·사회정책적으로 귀중한 성공사례들은 한글로 쓰여진 채 잠자고 있다.

 우리가 이룩한 국제표준 활동의 성과는 국제회의장을 누비며 우리 기술을 국제표준화하려는 전문가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다. 한편으로는 그간 축적된 양적 에너지를 질적 에너지로 변환해 ‘대한민국이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등장한다. 수출도 중요하고 돈으로 남의 나라를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IT 성공사례를 발굴, 영문화, 전파하는 일도 오늘의 ‘선진국 대한민국’에 부여된 의무며, IT 외교를 질적으로 고양하는 일례다. 그러므로 국제 표준화 활동을 ‘우리의 경험과 기술을 근간으로 수행하는 국제 외교 활동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정부는 전문가들의 IT 성공사례 발굴 연구와 국제기구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그 기대효과는 첫째, 국제사회에서 ‘은혜를 갚는’ 공여국으로서 한국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고 둘째,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성공모델이 개도국에 전수돼 관련 기기·시스템의 파생수요를 견인할 것이며 셋째, 이 같은 국가 이미지 제고전략은 결국 ‘1국 1표 원칙’의 국제무대에서 개도국으로부터 아국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함으로써 유사시 외교적 목적(의장단 진출 등)을 달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우리가 낙후된 IT국가 그룹에 속해 있었던 1980년대 당시, 나는 ITU,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얻은 선진사례를 바이블처럼 공부했다. 즉, 우리가 자료를 수집하며, 전문가들을 만나 상담하고 배웠던 장소가 ITU였다. 그만큼 우리는 국제사회의 빚을 졌다. 이제부터는 대한민국이 노력했던 과정과 결과를 적극적으로 개도국들과 나눠야 한다. 그것이 ‘IT 일등국가 대한민국이 갖춰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임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아울러 이러한 활동은 국운 상승기에 있는 대한민국의 IT전문가가 누리는 기쁨이며, 초등학교 때 칠판 옆에 붙어있던 UN 참전지원국들에 진 신세를 부모님 대신 갚는 길이기도 하다.

 지경용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kyjee@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