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아이폰 `때~문에`

[데스크라인] 아이폰 `때~문에`

 ‘웃지 않으려면 가게 문을 열지 말라’는 유태인 속담이 있다. 내가 먼저 웃어야 고객이 따라 웃고 상품판매에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이 웃으면 많이 팔 수 있다는 얘기다.

 애플 아이폰이 예약 판매를 합쳐 7만대를 넘어섰다. 올해 전체 휴대폰 판매량 2200만대의 0.3%를 약간 웃도는 수준임에도 열풍을 넘어 광풍 수준이다. 아이폰이 출시된 지 2년이 지났고 이미 90여 국가에서 팔리지만 유독 통신 강국인 한국엔 이제서야 소비자들 손에 들려졌다. 법적 제약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이통사들이 아이폰 출시를 꺼렸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단순 휴대폰을 넘어 휴대형 PC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선인터넷 망이 설치된 곳에서 초고속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와이파이가 탑재됐다. 그동안 국내에 출시된 휴대폰에 와이파이가 없었던 것은 제조사의 기술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 폭발적 수요가 예상되는 무선인터넷 접속 창구를 독점하기 위해 이통사가 제조사에 요청해 휴대폰에 이 기능이 빠진 것이다.

 아이폰 출시는 그동안 무선인터넷 발전을 가로막았던 빗장을 풀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통사들은 올인원 요금제 등 스마트폰 데이터요금을 크게 인하했으며, 접속 과정도 단순화했다. 일반 휴대폰에도 와이파이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제품 하나가 폐쇄적인 이동통신 시장을 개방시켰고 시장의 발전과 기술개발,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큰 일을 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쉬움이 있다면 KT가 아이폰을 국내에 들여오면서 애플사와 ‘굴욕적인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KT는 애플과 아이폰 물량을 50만대 개런티한 것으로 알려졌다. KT의 할부지원금을 40만원으로 추정할 경우 어림잡아 2000억원이라는 현금이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포털에 떠도는 ‘옴니아 일병 구하기’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2000억원이면 KT가 전국 핵심지역에 와이파이를 깔고도 남는 돈이다. 무선인터넷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도 구축할 수 있는 운영 자금이다.

 AS도 KT가 해준다고 하지만 모든 판단을 애플이 한다. KT는 판매만 하고 제품 불량에 대한 책임 소재는 애플이 판단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제조사와 거래에서 확고한 원칙을 고집하는 통신사업자가 애플과의 계약에서 한껏 몸을 낮춘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일부에서는 남는 게 없는 장사를 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애플의 글로벌 정책이라고 하지만 ‘SHOW’ 브랜드를 아이폰 전면에 표시하지도, 대리점의 포스터 한 장도 맘대로 붙이지 못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위치기반서비스(LBS) 사업을 애플사에 넘겨줬다는 것이다. LBS는 이동과 무선데이터의 결합으로 앞으로 새 먹거리 창출에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이다.

 ‘21세기 나당연합군’이라는 지적을 받으며 쇼가 없는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됐지만 긍정적인 파급 효과는 분명히 있다. 폐쇄적인 국내 이동통신 시장을 열었으며 아이폰 마니아를 비롯한 일반 사용자까지 웃게 했다. 내년부터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고객을 웃게 한 아이폰의 교훈을 국내 업체들이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

  김동석 모바일팀장 d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