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가 100년 넘게 액정 소재 연구개발(R&D)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을 중시하는 머크 가문의 일관된 철학 덕분이었습니다.”
알라스데어 젤프스 머크 액정 R&D 수석부사장은 머크가 액정소재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비결을 주주들의 ‘뚝심’에서 찾았다. 머크는 그룹 전체 지분의 70%를 120여 명의 머크 가문에서 소유하고 있다. 머크 일가 구성원이라 할지라도 소유 주식의 3분의 1 이상을 외부에 매각할 수 없으며, 가문 내에서만 양도가 가능하다. 소유 구조에 큰 변화가 없는 만큼 기업이 장기적 철학을 가지고 R&D에 매진할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재벌’ 구조와 유사하지만 소유와 경영이 엄격하게 분리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머크 가문은 단지 기업의 지분을 가지고 큰 철학만을 제시할 뿐,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젤프스 부사장은 “액정이 디스플레이 소재로 사용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후발주자들이 R&D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양산에 실패했다”며 “100년 이상 연구한 성과들을 단기간에 따라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1970년대 액정이 디스플레이 용도로 사용되자 바이엘·로슈 등이 R&D를 시도했지만 상용화에는 실패했다. 금융위기가 극에 달했던 지난해 오히려 R&D비용을 12억유로 이상으로 증액할 만큼 기술개발에 대한 머크의 신념은 강고하다.
향후 액정 기술 전망을 놓고는 ‘친환경’을 키워드로 꼽았다. 젤프스 부사장은 “최근 개발한 PS-VA 기술이 화질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며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한국·일본·대만 LCD 업체들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고분자 분산형 액정(PDLC)’을 이용한 ‘스위처블 윈도’나 액정 소재를 혼합한 LCD용 광학필름 등 새로운 시장도 창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위처블 윈도는 유리창 표면에 액정 층을 만들어, 전류를 인가하면 외부의 빛이 차단되는 기능을 가진 특수 유리다. 자동차·항공기 등 특수 목적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액정 외에 최근 전자소재 신규 아이템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가 태양전지용 식각액과 발광다이오드(LED)용 형광체다. 특히 LED용 황색 형광체는 최근 국내 LED 업체 등이 양산 공급에 성공했다. 니치아·오스람·도요타고세이 등이 과점하고 있는 형광체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높일 전망이다.
다름슈타트(독일)=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