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 컴퓨터 그래픽(CG)업계는 10여년 전만 해도 기술력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당한 열세였으나 최근에는 인력대비 결과물에서 오히려 선진국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 영화를 견인했던 CG업계는 최근 침체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CG기술을 성장시켰던 우수 인력의 대거 이탈이 예고돼 있어 어렵게 쌓아 올린 기술·산업적 성취가 붕괴되기 직전에 이르렀다.
국내 CG업체들이 산업적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할리우드 진출이다. 만약 한국 업체가 안정적인 CG 파이프라인 축적으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CG 수출액은 획기적으로 증가해 외화획득과 고용창출 면에서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경쟁국가에서 제공하는 정부 보조금이 한국 CG기업의 경쟁력을 격하시키고 있다. 실례로 독일 정부는 CG 예산의 25%를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업체가 독일 업체와 같은 가격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25% 이상 저렴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정부에서 CG 자국 투자유치를 위해 지원하는 나라는 독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캐나다·남아공·프랑스·영국·뉴질랜드·호주·싱가포르 및 미국 여러 주 등이 모두 정부에서 세제감면을 해주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나라다.
최근 외국 CG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어 매우 반갑기도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제도를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그 기간 동안 CG업계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장에 CG업계가 경쟁력을 가지고 할리우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할 수 있는 대안은 바로 CG관련 펀드를 육성하는 것이다.
최근의 금융위기 때문에 할리우드 제작사는 영화 제작비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미국 제작사가 자금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CG업체에 우선권을 주고 있어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 CG를 유치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할리우드 영화에 투자할 펀드가 가지는 파워는 상당하다. 즉, 할리우드 영화에 투자하고 그 대가로 CG를 한국 업체가 작업하도록 하자는 것이 내가 제안하는 펀드의 기본 구조다. 그리고 이런 CG펀드에 적합한 형태는 Gap펀드다. Gap펀드는 Last In, First Out의 구조로 원금과 프리미엄을 최우선적으로 회수하니 안정성과 수익성이 뛰어나다. 이러한 펀드 운영으로 수익도 얻고 CG산업도 육성할 수 있는 것이다.
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우선, CG도 영화나 TV드라마와 마찬가지로 투자 대상물로서 중소기업청 관련법령을 개정해 인정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기존의 영화 펀드가 한국영화에 투자를 하듯이, 할리우드 영화라 할지라도 한국에서 작업하는 CG에 펀드가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해외 영화에 CG 수주를 조건으로 투자하거나 CG 현물투자하는 경우 한국영화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현행 영화진흥위원회 기준에 따라 한국영화로 인정받지 못하면 영화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니아 연대기’나 ‘킹콩’ 같은 블록버스터의 CG 예산은 1억달러가 넘으며, 최근 국내 개봉예정인 ‘아바타’는 CG 예산이 2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최근 할리우드는 CG를 더욱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이러한 블록버스터의 CG 제작에 참여하게 되면 단순한 금액 이상의 가치를 얻게 될 것이다. 이는 CG펀드 조성을 위한 선결과제가 해결된다면 먼 훗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배용국 블루스톰 대표/ykbae@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