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통비법 개정의 필요성](https://img.etnews.com/photonews/0912/091221060106_1155087586_b.jpg)
지난 17대 국회 법사위에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마련됐다가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되고 작년에 다시 같은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감청설비의 보유주체와 감청주체를 분리하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감청장비를 자체 보유해서 운영하면 불법감청을 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감청설비의 보유주체와 감청주체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은 때에만 통신회사의 협조를 받아 감청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은 이미 주요 선진국이 도입한 지 10년이 넘은 제도다.
물론 현행법에 따른 통신감청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감청은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허용돼 온 합법적인 수사기법이다. 다만 X파일 사건 이후 감청제도의 위험성을 보완하기 전에는 무선통신 감청을 중단할 수밖에 없어서 장비를 폐기하고 이동통신 감청은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일 뿐이다.
통비법 반대론자들은 법이 개정되면 정부가 개인의 사생활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다. 통신감청은 그것을 할 수 있는 대상범죄가 제한돼 있고, 그러한 범죄에 대한 혐의가 확인돼야 하며 다른 방법으로는 범인 체포나 범죄 입증이 불가능함이 인정돼야만 법원이 허가해 주도록 돼 있다.
통신사업자가 가입자의 모든 통화내용을 녹음해 두었다가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이를 제공해 주도록 바뀐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법원에서 감청영장이 발부되면 그 영장에 기재된 특정인의 통화만 선별해서 전용선을 거쳐 수사기관에 연결해 주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에 의한 감청방법이다. 이는 현재 활용되고 있는 유선전화 감청방법과 똑같은 방식이다. 통신사업자도 감청과정에서 통화내용을 들을 수 없으며 영장이 발부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감청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사업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의 문제는 감청을 위한 장비인 통신회선 선별장치에 접속하는 모든 사용행위의 로그기록이 남도록 함으로써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이 자체장비로 감청을 하는 때와 비교해 보면 훨씬 안전한 방식이다. 통비법이 개정되면 법원과 통신사업자 그리고 수사기관 등 당사자 모두를 매수하지 않는 한 불법감청은 불가능하게 된다.
통비법에 대한 우려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러다가 수사기관이 독자적인 장비를 개발해서 자체적인 감청에 나서게 된다면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현행법으로도 그것은 허용돼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범죄수사를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범죄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받을 권리 또한 중요한 기본권이다. 이 권리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범인이 체포돼 응징받을 때 지켜질 수 있다. 중요한 수사방편 가운데 하나인 감청을 하지 말라는 것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행 통비법을 고수한다면 수사기관이 자체장비를 개발한 후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이를 가져다 이동통신사의 교환기에 설치한 후 감청을 하게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것보다는 통비법을 개정하는 것이 백배 안전한 길이다. 하루빨리 정부와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고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중앙대 법대 김성천 교수 sckim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