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정의 성공파도] (232)송년준비-누리기](https://img.etnews.com/photonews/0912/091224100800_1473959965_b.jpg)
단체 산행을 갔다. 민폐가 되면 안 된다는 치열한 각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뒤처지지 않겠다는 각오가 풍경을 감상할 겨를을 빼앗아 버렸다. 내가 몇 번째인가. 꼴찌는 아닌가. 땀 나서 화장이 지워지지는 않았나. 저 분의 등산화는 얼마짜리인가.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두껍게 입고 왔나. 숨이 턱에 차 오르도록 따라붙으면서 고작 이런 생각들에 치여 산을 누리지 못했다. 진정 등산 가서 누려야 할 신선함과 푸름을 누리지 못하고 절경을 즐기지 못했다. 혼자 있으면 온전히 나지만 둘이 있으면 반은 내 것이 아니다. 혼자 등산 가거나 가족과 갈 때보다 여럿이 단체 산행을 하니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산은 안중에서 밀렸다.
삶도 그렇다.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오롯이 누리기보다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하고 견주느라 삶의 누림은 뒷전으로 밀린다. 삶의 등산길에서도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는커녕 등산길을 앞서보겠다고 다투기만 하고 좋은 자리를 맡겠다고 신경전을 펼치기만 한다. 결국 생이 끝나면 그 산길도 끝인 것을.
이 삶을 누려야 한다. 누린다고 하면 무언가 특별해야만 누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富)나 명예나 특권만 누릴 것들이 아니다. 이 공기, 이 생명, 이 공간도 누릴 것들이다. 태양이 떠 있을 때 듬뿍 햇살의 혜택을 누리고 알싸한 추위가 밀려올 때 조여주는 긴장감을 누리자. 지금 이 순간 내게 부여된 모든 것들이 누릴 것들이고 즐길 것들이다. 누리라는 것은 흥청망청 쓰며 살라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것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표현하며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헬렌 켈러는 “눈 뜬 자는 보는 행복을 잊는데, 앞을 못 보는 나는 들을 수 있음을 감사하며 맘껏 누린다”고 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누리며 기뻐할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