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용돈을 충당하기 위한 거짓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하루는 사전 산다고 돈 받아가고, 하루는 딕셔너리 산다고 돈 받아가고, 하루는 콘사이스 산다고 돈 받아갔다. 문제집, 보충수업비, 급식비를 두번 타가는 경우도 있고, 책, 학용품, 준비물값에 몇천원을 덧붙여 뻥튀기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갖고 싶다고 다 사주지 않던 때라 늘 부족한 게 많았다. 이렇게라도 용돈을 보충해야 최소한의 사고 싶은 것들을 살 수 있었다. 부모님도 알면서 속아주고 모르지 않지만 넘어가 준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세상이 풍족해져서인지 이런 거짓말은 안하는 것 같다. 아니면 워낙 투명사회가 되서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명확한 금액이 공지되고, 통장에서 자동이체가 되며, 검색하면 책값이 확인되기 때문에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녀수는 적어지고 교육열은 뜨거워져 부모의 사랑이 용돈으로 충만해진 이유 때문도 있다. 여하튼 20대에 벅찬 패밀리 레스토랑, 명품가방, 좋은 자동차를 타는 젊은이가 늘고 있는 건 확실하다.
내가 아는 지인은 대학에 들어간 자녀에게 삶에 필요한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차용증을 쓴단다. 기본적인 의식주와 학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빌려주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에 너무 각박한 게 아닌가 싶지만 무릎을 탁 칠 교육법이다. 차용증은 분수를 파악하게 하고 효도의 근거를 만든다. 내 주제와 여건에 이걸 사도 되는 건지,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데 갚을 능력은 되는지, 내 분수를 알게 한다. 또 부모님이 주시는 것이 공짜가 아니고 부모님이 베푼 만큼 나도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만든다. 듣기만 해도 뭉클해지는 부모의 사랑이 차용증으로 퇴색될까 염려되는가? 부모의 사랑은 한없이 솜털처럼 보드랍기만 해서는 안된다. 때로는 모질어야 한다. ‘거친 것’은 사포와 같지만 ‘모진 것’은 가죽과 같다. 거친 것은 까칠까칠하고 딱딱하지만 모진 것은 유연하며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모질게 차용증을 쓰며 엄하게 사랑하자.
이성현기자 argo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