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지난해 12월 27일 마스다르시티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마스다르시티 측으로부터 탄소제로 도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방문에서 “산유국인 중동국가로서 이렇게 앞서나가는 데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두바이 국영기업인 두바이 월드가 모라토리움(채무지급유예)을 선언, 전세계를 크게 긴장시킨 이후 한 달 만에 찾은 이웃 도시국가 아부다비의 거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직선으로 쭉쭉 뻗은 널찍한 도로에서는 아부다비 3대 국민차(?)로 불리는 벤츠, BMW, 렉서스 등이 도시를 질주하고 있었다. 두바이만큼은 아니지만 도심에서는 70층이 넘는 고층 건물도 속속 건설중이었다. 두바이에 대한 세계의 우려가 높아지자 곧바로 두바이월드 자회사인 나킬에 구제금융 100억달러를 투자하고, 한국산 원전 도입에만 200억달러(유지 보수 포함할 경우 400억 달러)를 지급한 아부다비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현지에서 생활하는 한 한국인은 “금융 위기는 두바이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아부다비에는 미풍에 그쳤다”며 “외부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두바이 집값 폭락과 같은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두바이 사람들은 집값을 내리는 것보다는 아예 비워둔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은 아부다비, 두바이, 샤자, 아즈만, 움 알 콰인, 아으스 알 카이마, 후자이라 등 7개의 에미리트(국왕이 다스리는 도시)로 구성된 국가다. 세계 6위의 원유매장량(978억배럴)과 가스매장량(227.1조입방피트)을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5만5000달러에 이른다. 7개의 에미리트 가운데 맏형 격인 아부다비는 UAE 토지의 상당부분과 석유매장량의 94.3%를 차지하는 가장 부자 에미리트다.
아부다비 정부가 운영하는 국부 펀드 규모는 6000억달러(약 683조원) 규모로 세계 국부 펀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특히 총 인구 560만명 가운데 실제 UAE 인구는 18%에 그치는 만큼 부는 국민에게 집중되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건설중인 탄소 제로 도시=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려 차를 타고 아부다비로 가다 보면 5분도 안 돼 오른쪽에 ‘마스다르시티’라는 안내 푯말이 나온다.
마스다르는 아랍어로 ‘원천·자원(source)’이라는 뜻으로 아부다비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세계 최초의 ‘탄소 제로’ 도시다. 즉 전 세계의 신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첨단 기술을 집약해서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 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지난 2008년 2월 착공해 오는 2016년 완공하는 게 목표다. 약 6㎢의 면적에 4만여 상주 인구와 5만여 출퇴근 인구를 비롯한 9만명을 수용하게 된다. 여기에는 신재생에너지 등 탄소 제로와 관련 있는 기업 및 연구소 등 총 1500개를 유치할 예정이다. 투자 금액은 총 220억달러(약 25조원)로 이 가운데 40억달러는 아부다비 정부가, 나머지는 해외 유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미 이곳에는 3000가구 전력 공급을 위한 10MW의 태양광 발전소가 지어져 운영중이다. 여기에는 8만8000개의 태양광 패널이 장착돼 있다. 탄소 배출 제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마스다스시티는 태양광발전(42%), 태양열발전(35%), 태양열온수(15%), 폐기물 발전(8%) 등을 통해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계획이다.
9만여명이 생활하면서 건물·이동을 위해 배출하는 탄소를 제로로 만들기 위해서는 건물 에너지효율 증대(-56%), 재생에너지 발전(-24%), 전기자동차 운행(-7%), 폐기물 에너지전환(-12%), 탄소 포집(-1%) 등의 기술을 사용한다. 교통수단의 경우 일반 자동차의 출입을 통제하고 내부는 ‘PRT(Personal Rapid Transit)’라는 전기자동차를 이용한 자동화 택시서비스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개교한 마스다르 대학원은 첫 신입생을 선발했다.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이 대학에는 전세계에서 1500명이 지원, 총 99명을 선발했다. 첫 신입생 수준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를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UAE 원전 수주를 위해 아부다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이곳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석유 부국이 탄소배출 제로를 꿈꾸며 사막 한가운데 꿈의 도시를 짓는 데 대한 경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산유국인 중동국가로서 이렇게 앞서나가는 데 경의를 표한다”고 하자 술탄 마스다스 시티 사장은 “기후변화에 대비해 저탄소 성장을 추진하는 것은 아부다비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목표를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며 한국기업의 참여를 요청했다.
◇산유국에서 하이테크 대국으로= 세계적인 산유국가인 아부다비 정부가 이처럼 생뚱맞게(?) 탄소 제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50년 뒤를 내다본 고민의 산물이다. 석유는 유한한 만큼 석유 고갈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랍 국가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원전 건설을 결정했다. 모하메드 아부다비 왕세자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이 같은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실제 UAE 국가총생산(GDP)의 60%는 석유에서 발생한다. 아부다비 정부는 지난 2008년 11월 석유의존 경제에서 비석유분야 균형의 산업 다변화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아부다비 경제비전 2030’을 발표했다. 그 모델은 석유 대국이면서 기술 대국이기도 한 노르웨이다.
아부다비는 이를 위해 한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UAE 원전을 공급하게 될 우리나라에 △원자력 △재생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조선 △반도체 △인력양성 등에서 협력을 부탁했다. 이미 아부다비 국영 기업인 ATIC는 AMD의 반도체 제조부문, 싱가포르의 파운드리 기업인 차터드를 인수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다. 또 하이닉스 인수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막에 세계 최고층의 건축물 ‘부르즈 칼리파’를 짓고 바다 위에 인공 주거지 ‘팜주메이라’를 건설하는 상상력을 발휘한 UAE가 사막에 원전과 탄소 제로 도시, 반도체 공장, 조선소를 짓는 꿈을 꾸고 있다. 그 동반자는 지하자원도 없고 돈도 부족했지만 인적자원으로 G20 국가 대열에 오른 우리나라다. UAE 독립 40주년을 맞는 2011년, UAE 미래 청사진 발표에 또 어떤 상상력이 담겨 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아부다비(UAE)=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