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두 가지 소중한 자산이 있다. 하나는 세계적 사업 역량을 갖춘 대기업이요, 다른 하나는 세계적 기술의 벤처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지식 경제 시대의 경쟁력은 과거의 생산 원가와는 달리, 개발비를 판매 수량으로 나눈 지식 원가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5억달러를 투입한 영화 아바타를 5억명이 본다면 원가는 1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연구개발의 효율성은 중요하나, 시장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궁극적 경쟁력은 한계가 있다. 시장 역시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지식경제 경쟁력의 두 축인 시장 역량과 혁신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 전략이라고 정의해 본다. 그러나, 삼성·현대 등 대기업이 단독으로 두 가지 역량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지식경제 패러독스다. 기업의 규모에 비례하여 혁신성이 저하된다는 것은 이미 이론의 여지가 없는 현상이다.
전후 폐허에서 출발하여 단기간에 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삼성·현대LG 등의 대기업은 분명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또 하나의 행운은 세계적 수준의 혁신 역량을 갖춘 벤처 기업들이 다수 등장하여 이미 1000억 매출이 넘는 벤처가 2008년 말 기준으로 200개를 돌파하고 연간 20%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벤처생태계는 짧은 기간의 압축 성장을 통하여 2000년 초반의 시련을 거치면서 질풍노도와 같이 성장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휴대폰·디스플레이 산업은 대기업이 선도에 서 있으나, 그 이면에는 수많은 벤처의 부품·장비의 경쟁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대기업이 산업을 이끌고, 시장을 개척하면 주요 부품 장비들을 미국 일본 업체에 비하여 낮은 가격에 개발 공급하는 벤처기업들이 뒷받침하는 것이 한국 첨단 산업 경쟁력의 본 모습일 것이다. 전 세계에 걸쳐서 한국과 같이 대기업의 시장 역량과 벤처의 혁신역량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국가가 많지 않은 것은 아마도 한국의 행운이 아닌가 한다. 이제는 이 두 가지 소중한 자산을 더욱 강력히 결합시켜 4만달러대의 선진국가로 도약하는 새로운 성장 전략을 구축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개별적으로 시장역량과 혁신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은 각각 대기업과 중소벤처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역량을 결합하는 힘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복합 기업 생태계에서 발현된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한국의 화두가 된 애플의 아이폰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애플이 제공한 시장 플랫폼에 전 세계 수많은 개발자들의 혁신 아이디어가 구현되어 10여만개의 응용 프로그램들이 앱스토어에서 제공되고 있고, 이 결합력이 바로 애플 생태계의 경쟁력일 것이다. 애플뿐 아니라 구글·닌텐도·페이스북 등의 사례에서 이제는 단일 기업이 아니라 복합 기업생태계의 경쟁으로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협력 기업이라는 형태의 폐쇄된 생태계로 구성된 대·중소기업 관계를 발전해 왔다. 그러나, 제품을 넘어 서비스로 경쟁 구도가 변화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협력 관계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닫힌 생태계에서는 시장의 한계가 있다.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열린 복합 생태계로의 이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개방 플랫폼을 통하여 대기업의 시장 역량과 벤처의 혁신 역량이 결합하여 국가 경쟁력을 배가하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시장을 확대하여 궁극적으로 대기업에도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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