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자제 선언에도 인터넷 시장 `혼탁`

최근 미국에 출장차 다녀온 A(36)씨는 아주 불쾌한 일을 겪었다. 미국 거래처를 만나고 일찍 잠자리에 든 A씨는 잠이 들 무렵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에 잠이 깼다.

A씨는 모르는 번호에 궁금해하면서도 혹시 회사에서 중요한 일로 전화를 걸었을까 긴장하면서 휴대전화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안녕하세요. 고객님. LG파워콤입니다. 고객님 현재 쓰시는 초고속인터넷을 저희 회사로 옮기면 현금 30만원을 지급합니다”라는 내용의 상담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내에서도 종종 이러한 전화를 받았지만, 해외 로밍 안내 서비스까지 신청하고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새벽녘에 이러한 전화를 받자 A씨는 화가 치밀어올랐고 국내로 돌아오자마자 LG파워콤을 합병한 통합 LG텔레콤 측에 항의전화를 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초고속인터넷 3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따라 과열 마케팅 자제를 선언했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수십만원대의 현금이 오가는가 하면 고객 정보를 유출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통합 LG텔레콤을 비롯한 초고속인터넷 회사들의 전화 마케팅은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1년 전에 LG파워콤 초고속인터넷에 가입한 B씨는 최근 인터넷 가입 판매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판매점 직원은 B씨에게 “저희로부터 LG파워콤에 가입한 지 1년이 지나 위약금 등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이번에 SK브로드밴드로 옮겨가시면 위약금은 물론 추가 현금이나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정식 대리점이 아닌 초고속인터넷 3사 고객을 모두 유치하는 이들 판매점이 고객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어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현금을 통한 고객 빼앗기도 여전하다.

KT는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전화, 인터넷TV(IPTV)를 모두 묶은 결합상품에 가입할 경우 최대 42만원의 현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SK브로드밴드와 LG텔레콤도 40만원대의 현금을 제공하고 있다.

100메가(Mbps)급 초고속인터넷을 1만6천원에 제공하거나 10개월 동안 요금을 면제해주는 경우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9월 SK브로드밴드와 LG파워콤에 대해 시정조치 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한 뒤 각사 최고경영자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과열 경쟁은 공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 목소리로 얘기했지만 정작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잇단 자정 요청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선 대리점ㆍ판매점에서 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리면서 시장 혼탁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어느 한 업체만 과열 경쟁을 멈출 경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근절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