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삼성전자와 애플, 최후 승자는

[데스크라인]삼성전자와 애플, 최후 승자는

 최근 국내 팹리스 기업의 사장이 일본 굴지의 전자기업을 방문했다. 삼성전자·LG전자에 공급 중인 반도체를 그 기업에도 팔기 위해서다. 이 일본 기업은 국내 팹리스 기업의 설명을 천천히 듣더니 “귀사의 제품은 이미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제품을 쓸 수 없다. 우리는 삼성·LG와 달리 이류기업이기 때문에 우리 로드맵상으로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얘기했다. 팹리스 회사 사장은 “비꼬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삼성·LG를 자기보다 앞선 일류기업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한때 전자왕국으로 불렸던 일본기업마저 인정하는 세계 일류기업이 됐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연결기준 매출은 136조2900억원으로, 달러로 환산하면 1170억달러에 이른다. 독일의 지멘스(1098억달러), 미국 HP(1146억달러) 실적을 넘어서면서 세계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영업이익은 1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일본 10개 전자회사의 영업이익 합계보다 많다.

 그런데 지난주 IT업계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유감스럽게 삼성전자의 매출 1위 등극보다 애플이 선보인 태블릿PC인 ‘아이패드’에 집중됐다. 행사 당일 구글의 뉴스 검색에선 수천건의 아이패드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많은 언론이 애플의 전략, 아이패드 특징, 향후 전망 등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의 관심을 보였다. 당초 예상치 못했던 아이폰의 선풍적인 히트를 본 국내 언론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4분기 애플의 매출은 157억달러, 순이익 33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매출은 절반에 미치지 못하지만 순이익률은 두 배를 상회한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태생부터 다르다. 애플은 애플컴퓨터라는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탄생시킨 벤처기업이었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일본 산요와의 기술협력을 바탕으로 지난 1969년 전자사업에 뛰어들었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뛰어난 인재들과 광대한 내수시장 등을 기반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삼성전자는 되겠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일본 기업 제품을 뜯어 모방하고 혹은 복제하기도 했다. 애플이 시장 점유율보다 소수의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 집중해 왔다면 삼성전자는 시장 점유율 확대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두 회사는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현 IT업계에서는 최고의 승자들로 거듭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워크맨 등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성장했지만 삼성전자는 잘 단련된 생산과 추격 능력에 강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삼성전자의 혁신성 부족이 수익을 훼손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숨기지 못하는 신문다운 충고다.

 혁신성이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지만 생존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제록스·루슨트 등 애플보다 더 뛰어난 혁신성을 발휘했던 기업들도 사라졌거나 M&A 대상이 됐다. 제품 혁신성에선 애플보다 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생산, 공급망 관리 등에서 삼성전자의 혁신성을 따라갈 만한 기업은 드물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바야흐로 경쟁관계로 접어들었다. 승자를 점치기 어렵다. 다행인 점은 삼성전자에 여전히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리더가 있고 이를 공유하는 직원들이 많다는 점이다.

유형준 반도체/디스플레이 팀장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