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느 과학자의 죽음

[기자수첩]어느 과학자의 죽음

 지난 24일 저녁,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청천벽력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한국 초전도체 분야의 최고봉인 이성익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58)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이었다. 평소 고인을 멘토로 따르던 동료 교수의 오열하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날 저녁 자리에 우연히 모였던 과학기술 관계자들은 충격적인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고인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한 정부기관 연구원은 “연구 성과와 논문에 대한 압박감이 얼마나 컸으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는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 시절 새로운 초전도체를 개발 ‘사이언스’지에 발표하면서 전 세계 물리학계에서 주목받았고 우리나라 초전도 분야 위상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렸다. 학계에서는 한국에서 노벨상이 배출될 경우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그를 꼽아왔다. 과기계는 “SCI 논문 등 드러나는 성과물만을 중요시하고 재촉하는 사회적 풍토”가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였던 만큼 더 인정받는 성과물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 교수의 유서에는 ‘물리학을 사랑했다. 큰 논문을 써야 하는데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뒤 기자 간담회를 연 박찬모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과학자들을 너무 푸시(push)하는 우리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며 “성과물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스트레스를 줘서는 안되지 않겠냐”며 고인을 애도했다.

 삼성전자 부사장의 투신 자살에 이은 이 교수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성과제일주의에 대해 가슴아픈 경고를 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