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입체영상 비즈니스 분야에서 유명한 리얼디(RealD)사의 핵심에는 2008년까지 CTO로 재직했던 레니 립튼이 있다. 입체영상 제작기술 관련 총괄 스태프를 스테레오그래퍼라고 부르는데 레니 립튼은 바로 스테레오그래퍼의 원조격이다. 필자가 만난 레니 립튼은 일흔의 노구에도 어린 아이 같은 눈빛으로 연구자들을 주시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매우 별나다. 대학생 시절에 1960년대 모던 포크의 기수인 피터 폴 앤 메리의 ‘Puff the Magic Dragon’ 노랫말을 짓는가하면 독립영화 제작에 투신하기도 한 다채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영화인의 이력을 살려 ‘독립영화 만들기’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은 당시 영화학도들의 교과서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 그는 영화학이 아닌 물리학을 전공했다. 이공학도 답게 입체영상 분야에 30여개의 특허도 가지고 있다. 여러 학문과 분야를 크로스오버하면서 경험한 다채로운 이력은 오늘날 그를 입체영화의 대부로 만든 근간이 됐다.
현재 한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의 이슈는 의심할 여지없이 입체영상이다. 이른바 아바타 효과로 불리는 광풍의 영향이다. 그렇다면 입체영상을 굵직한 비즈니스 산업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고품질의 입체영상 콘텐츠를 찍을 수 있는 고급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는 게 바람직할까? 답은 레니 립튼의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입체영상인으로서 성공한 레니 립튼의 원천은 다양한 경험과 풍부한 연구기반을 통해 입체영상의 속성을 제대로 익혔다는 데 있다. 입체영상은 공학적 원리와 휴먼 팩터라 불리는 인지공학적 측면, 더불어 영상 특유의 미학적인 속성들이 맞물려 구현되는 복합적인 매체다. 입체영상 제작을 담당하는 스테레오그래퍼 역시 엔지니어와 아티스트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입체영상 제작 전문인 양성교육은 입체영상의 여러 속성을 망라한 통합적인 프레임워크를 짜는 게 중요하다. 그 프레임워크는 입체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때 아티스트 혹은 엔지니어로서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도록 구성돼야 한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입체영상의 공학적 원리와 휴먼 팩터 인지이론을 탄탄히 익히는 과정, 그 이론을 토대로 입체영상의 정확한 정량을 모니터링하는 반복훈련, 입체영상 콘텐츠 제작 전 기획단계에서 시나리오를 미학적으로 분석해 입체영상을 디자인하는 아티스트로서의 훈련이 교육과정에 포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을 통한 이들 수준의 기술습득 목표는 단순하게 입체영상 콘텐츠 자체를 작업하는 기능인을 만드는 것이 아닌 궁극적으로 입체영상 가운데 가장 고난이도의 기술을 사용하는 실시간 기반의 콘텐츠 즉, 콘서트 같은 공연물과 스포츠 중계물, 대형 스크린 기반의 장편 상업영화 등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고급 인력양성에 맞춰야 한다. 이런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입체영상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해당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은 결과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매우 지난한 길이다. 그러나 당장의 조급함을 버리고 장기적인 전망으로 바라본다면 가장 효과적인 투자가 바로 제대로 디자인된 교육이다. 입체영상의 산업화 역시 교육이란 정답은 유효하다.
최양현 영화제작사 타일씨앤피 영화감독 paran5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