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진흥정책에 딴죽을 걸고 싶지 않다. 그저 기자로서 방통위가 내놓은 마케팅 20% 규제, 단말기 보조금 규제에 대한 또 다른 생각도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을 뿐이다.
지난 5일 방통위는 통신사업자 사장단과의 면담에서 소모적 마케팅을 자제하고 남는 돈을 무선인터넷 활성화 재원으로 돌리자는 내용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합의 내용은 △유무선 마케팅비용 계정 분리 및 공개 △매출액 대비 마케팅비용 비중 20% 상한 규제 △무선 인터넷 활성화를 위한 통합 앱스토어 출범 등이다. 마케팅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고, 정기적인 모니터링도 한다고 했다.
처방전이 옳다고 치자. 이 처방전으로 ‘변칙’ ‘편법’ ‘무법’ 보조금이 없어져, 무선인터넷 인프라가 무척 좋아진다고 해두자.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정말 무선인프라만 좋아지면 끝나는 것일까. 보조금을 잡기 위해 통신사업자의 마케팅 비용을 두부 자르듯 규제할 수 있을까.
정부의 마케팅 비용 규제는 이례적인 일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자신의 자원을 전략에 따라 배분한다. 사업을 정하고, 이에 인력과 자금을 집중 투여한다. 그리고 성과를 낸다. 이게 마케팅이다.
방통위는 이같은 기업의 고유영역인 마케팅을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우를 범하고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에서 기업의 마케팅 비용을 20%로 제한하겠다는 조치를 내놓다니, 이해가 안 된다. 20% 초과 여부를 어떻게 조사할까. 분기별로 세무조사를 한다는 것인지, 방통위가 통신사업자 곳간에 현미경을 들이대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도 간과했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무선부문 올해 마케팅 비용 추정치는 SK텔레콤이 23.8%(2979억원), KT 33.1%(2298억원) 통합LG텔레콤 33%(1687억원)다. 유선부문에서는 KT가 17.5%(1556억원), 통합LGT가 25.7%(926억원), SK브로드밴드 29.8%(642억원) 수준이다. 무선 부문에서 1위 사업자 SKT의 마케팅 비용을 20% 이내로 조정하더라도 2500억원에 이른다. 반면에 통합LG텔레콤은 33%를 모두 사용해도 1687억원 밖에 안 된다. 마케팅 비율로 규제한다는 것은 자유경쟁 구조를 왜곡시키며, 이런 오류를 만든다. 방통위 지침대로라면 후발사업자는 마케팅 비용을 선발사업자에 비해 늘 적게 쓸 수밖에 없다. 선발과 후발이라는 틀은 영원히 고착된다.
타이밍도 적절하지 않다. 무선인터넷 인프라 구축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스마트폰의 보급이다. 정부 정책결정 부재로 인해 우리는 최고의 통신네트워크를 보유했으면서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후발 국가가 됐다. 선발 국가와 기업을 추월하려면, 스마트폰을 보급해 각종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전체를 융합에 대비한 모바일 테스트베드로 만들어야만 한다. 보조금을 규제할 때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광범위하게 보급해 사용자 인터페이스,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등을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인프라와 단말기 보급, 적절한 요금제, 앞선 사용자 문화 등을 병행해서 구축해야 한다. 정책을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했다. 타이밍을 놓친 정책은 현 정부의 ‘전봇대(전주)’가 될 수 있다.
김상룡 정보통신담당 부장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