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튀기는 욕망으로 독하게 생존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권력욕이나 재력 등 확실한 목표를 갖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해야 살아남는 세상이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살 자신도 없다. 지지고 볶으며 밀치고 제치는 사회생활이 체질적으로 힘겹다.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조직생활이 정신적으로 버겁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 서로 사랑하고 서로 챙겨주며 살고 싶은데, 어디 그런 세상은 없을까?
딸아이와 첫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단다. 하지만 싸라기눈처럼 살짝 내린 첫눈으로는 눈사람을 만들기가 역부족이었단다. 하지만 딸아이는 약속한 일이니 해달라고 졸라댔다. 어쩔 수 없이 세시간이 넘게 아파트 단지내 눈을 모두 모아 겨우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러자 다섯살 된 딸아이의 한마디가 걸작이다. "거봐, 하면 되잖아". 그렇다. 다섯살된 꼬마에게 진리를 배웠다. 하면 된다. 이 세상은 그런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계절을 이기는 꽃은 없고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은 없지만 꽃이 펴서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변해서 세상을 바꾼다. 세상이 야생 정글처럼 원초적 욕망으로 득시글거린다고 탓하지 말고 나부터라도 따뜻한 사랑으로 옆사람을 챙겨내자.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돋보기로 빛을 모으면 불꽃이 일어난다. 진정 버려야 할 것은 독한 세상이 아니라 "안 된다"는 사고 패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기보다 세상을 바꿀 방법을 찾는 것이다. 혹시 진정으로 사랑과 나눔의 세상을 지향하는 것인지, 작금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지 자평해 보자. 포도 못 딴 여우는 "저 포도는 실거야, 저 포도를 먹는 것들은 다 속물들이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따먹지 못한 포도에 대해 소심하게 보복하는 여우처럼 도달하지 못한 욕망에 대해 소심하게 보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