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려버려 김태균∼ 오오오오오오오∼ 안타 김태균 안타 김태균’
지난 14일 일본 지바시에 위치한 지바 롯데 마린스타디움에 다비치의 ‘8282’를 개사한 한국어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팀에 새롭게 합류한 4번 타자 김태균을 응원하기 위해 지바 롯데 팬들이 부르는 노래다. 시범경기인 데다 유료임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은 일제히 일어나 함께 응원가를 불렀다. 일본인들의 야구 사랑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날 경기는 지바 롯데 마린스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대결이었다. 경기 시작은 오후 1시부터였지만, 열혈 야구팬들은 이미 10시 이전부터 모여들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은 경기장 주변의 노점에서 꼬치와 햄버거 등의 음식을 사먹으며 입장을 기다렸다.
경기 시각이 다가오면서 표를 사기 위한 긴 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경기장 직원은 줄의 맨 뒤에 서서 줄의 가장 마지막임을 알리는 푯말을 들고 섰다. 누구 하나 줄을 흩트리거나 새치기하지 않았다.
경기장 안에 들어서자 양팀 응원단의 경쟁적인 응원이 펼쳐지며 이미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응원단은 경기 내내 응원 구호와 노래로 열기를 더했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선수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비록 하나의 시범경기였지만 일본의 야구문화와 일본인의 야구 사랑을 한눈에 보여줬다.
이 같은 일본의 프로야구 열기는 오랜 역사에서 비롯됐다. 일본에 처음 직업 야구단이 생긴 것은 1920년이다. 하지만 현재의 프로야구리그와 같은 체제로 경기가 시작된 것은 1936년부터로 보고 있다. 이 해에 일본에서는 ‘일본 직업 야구연맹’이 설립됐고, 7개 팀이 참여하는 리그가 시작됐다. 이후 전쟁으로 잠시 리그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1946년 프로야구가 부활해 지금까지 오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는 일본야구기구(NPB : Nippon Professional Baseball Organization) 산하에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의 양대리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각 리그에는 6개팀이 소속돼 있어 총 12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 이승엽 선수가 소속돼 있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비롯해 임창용 선수와 이혜천 선수가 뛰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이범호 선수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이 있다. 일본 내에서는 한신 타이거스와 주니치 드래건스 등도 인기가 높은 팀이다.
프로야구 역사만 긴 것이 아니다. 야구 저변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우리나라 고교야구팀은 60개가 채 안 되는 데 반해 일본은 4000개가 넘는다. 이들 고교야구팀이 대부분 참가하는 고시엔 전국 고교야구 대회는 일본인들에게는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다.
오랜 역사와 넓은 저변은 일본 프로야구의 인기를 이어가는 밑바탕이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의 총 관중 수는 2293만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프로야구 관중 수는 역대 최대의 관중 입장기록에도 불구하고 592만명에 그쳤다. 일본의 4분의 1 수준이다. 인구 대비로 비교해도 일본은 5명 중 1명꼴로 야구장을 방문한 반면, 우리나라는 8명 중 1명인 셈이다.
또 한가지 일본 프로야구를 뒷받침하는 것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구단운영과 이를 통한 안정적인 재정이다. 입장권 수입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전체 관중 수로 비교했을 때 규모가 훨씬 크며, 입장권 한 장의 가격도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내야석의 경우 한국이 1만원∼1만5000원선인 반면, 일본은 약 2000∼3000엔(한화 약 2만6000원∼3만9000원) 정도다. 여기에 일본 프로야구 구단은 입장료를 제외하고 방송 중계권과 각종 브랜드 사업으로도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한국과는 대조된다.
안정적인 자금력은 구단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준다. 일본 프로야구는 탄탄한 자금을 바탕으로 항상 최고의 선수들을 수급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수준급 선수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승엽, 김태균, 임창용 등 국내 최고의 선수들을 일본으로 데려가는 것도 자금력의 힘이다. 한국의 스타 선수들은 경기력 향상뿐만 아니라 한국을 상대로 한 마케팅에 적극 활용, 응원상품이나 한국선수 관련 야구용품 출시 등으로 수익을 거두는 효과가 있다.
최근 지바 롯데 마린스가 온라인게임 업체 넥슨과 후원 계약을 맺은 것도 일본 프로야구 구단 마케팅의 좋은 예다. 일본 온라인게임 이용층을 분석해보면 남성이 76.2%이며, 연령은 30대 이하가 대부분이다. 프로야구의 팬층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롯데 마린스는 일본에서 부상하고 있는 온라인게임 산업과 손을 잡음으로써 양쪽의 고객을 상호 활용한 마케팅을 모색하는 윈윈 방안을 시도한다. 물론 후원 계약은 구단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세토야마 류조 롯데 마린스 사장은 스폰서십의 포인트로 네 가지 요소를 꼽았다. 세토야마 사장은 “넥슨과 롯데 그룹은 글로벌 진출, 성장성, 상호 고객 융합성, 엔터테인먼트의 네 가지 공통점이 있다”며 “양사가 협력해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일본 프로야구에도 문제점은 있다. 12개팀 중 8개팀이 도쿄와 오사카 주변에 편중돼 있고, 양대 리그간 인기 불균형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지역 편중으로 인해 센트럴리그에 비해 퍼시픽리그 경기의 전국 방송 중계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구단 인기와 수익에 차이를 가져오고, 다시 선수 수급의 불리함과 성적 차이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지바(일본)=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