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융합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는 26일로 두 돌을 맞는다.
방통위는 출범 직후 줄곧 세가지 ‘오해’에 시달려왔다. ‘방통위=방송장악’ ‘방통위=규제전문기구’ ‘방통위(IT)=일자리 천적’이 그것이다. 지난 2년간 국회 국감장에서는 ‘방통위’는 없고 ‘방송위’만 존재했다. 통신 쪽 이슈라면 통신요금인하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과정에서 방통위의 이미지는 규제전문기관으로 굳어갔고, 심지어 방통위(IT)는 일자리의 천적이라는 오명 속에 시름했다. 방통위에 대한 오해는 두 돌을 맞은 지금도 일부 유효하다. ‘일자리 천적’이라는 누명은 벗었지만 나머지는 아직 판단보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천적 오명은 벗었지만=방송통신위원회는 출범 첫 해 정통부를 계승한 IT주무부처로서, 연일 계속되는 현 정권의 ‘비판적 IT관’에 부딪혔다. 심지어 현 정부를 상대로 한 ‘IT명예훼손론’까지 대두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IT홀대’는 1년을 넘지 못했다. IT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청와대에 IT특보가 만들어지고, 정부의 관심이 부활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방통위는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됐다. 합의제에 기반하는 위원회 조직이라는 한계가 ‘IT정책’의 특성인 적시성을 살리지 못하며 업계와 동화하지 못하는 점이다. IT주무부처임에도, 타 부처 IT정책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바로 ‘IT기획 기능’ 부재라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업계는 물론 정치권에서 IT산업 부활을 위한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역풍’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여야를 막론하고 터져 나오기 시작한 ‘미래부’ ‘정통부’ 부활론이 그것이다.
◇발등의 불 끄다 보니=방통위 설치법은 방통위 역할을 규제와 진흥 모두에 두고 있다. 산업의 진흥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정책·기업·시장을 두루 섭렵해야 한다. ‘IT생태계 조성’을 강조하고, 방통위에 IT기획조직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난 2년 방통위는 정권에 민감한 이슈가 제기되는 국회에 대응하며 급한 불 끄기에도 허덕였다. 늘 정치적 이슈에 둘러쌓였고, 심지어 미디어법은 국회를 통과하고도 과정상의 논란으로 헌법재판소까지 가야하는 흠집을 남겼다.
부처 운영의 근간이 되는 각종 법들이 정치적 이슈로 계류됐고, 다행히 정책추진을 위한 일부 법들은 최근 통과됐지만 1기 방통위의 시계바늘은 이미 반환점을 돌아섰다. 그 사이 통신·IT업계는 융합과 접목을 키워드로 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속속 쏟아냈고, 방통위 테두리를 벗어나 타 부처와의 관계 정립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지난 2년 성과는=방통위 출범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IPTV는 2년만에 실시간 가입자 200만명에 육박하면서 교육·국방·의료 등 공공서비스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IT코리아 미래전략 수립, 녹색 방송통신, 방송통신분야 신성장동력 추진계획 등도 마련됐다. 방통위는 전문성 강화를 위해 PM 제도를 도입해 통신방송 R&D 체계 정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상파 3D 방송 추진과 무선인터넷 활성화 기반 조성, 전파산업 육성 기반 마련도 눈에 띄는 정책이다. 와이브로 등 전략 품목의 해외진출 지원도 지난 2년 방통위가 역점을 둔 사업이다. 와이브로 수출액은 2007년 910억원에서 2009년 6916억원으로 늘었고, DMB도 235억원에서 3110억원으로 급증했다.
◇방통위의 위상과 허상=방통위의 미디어 관련 정책은 연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다. 방송·신문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지적도 흘려버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정쟁의 중심에 서는 것도 결국 방통위의 위상문제에서 비롯된다. 시끄럽지만 실속이 없다. 방송사를 둘러싼 이권 다툼에 산업은 멍들었다. 국회 문광위나 방송심의 과정에서 나올법한 이야기가 산업을 진흥하겠다는 정부 부처 내에서 나온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답답하다. 방통위는 2실 4국의 초미니 부처다. 다른 경제 부처의 10분의 1 규모도 안된다. 그러다보니 해외 파견이나 교육을 갔던 공무원들은 자리가 없어 빙빙 돌고, 실·국장들은 제대로 일해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내줘야 할 형편이다. 이같은 상황은 과장급 이하 공무원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같은 진흥 정책을 추진하는 타 부처 실국장들과 달리, 방통위 실국장들은 사실상 소신을 펼칠 환경이 아니라는 것도 공무원으로서 힘든 대목이다. 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합의제로 결정되다 보니, 방통위 국장들이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타 부처 국장들보다 5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입 사무관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던 정통부는 사라진지 오래다.
◇1기 방통위 남은 기간 과제는=1기 방통위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원만했다’가 주를 이룬다. 최시중 위원장의 중량감에, 이경자 부위원장의 소비자중심 사고, 송도균 위원은 방송 전문성, 형태근 위원은 정책 전문성, 이병기 위원의 통신 전문성까지 완벽한 인적 조화를 이뤘다. 하지만 ‘원만했다’는 평가는 ‘싸우지 않고 잘지냈다’ 정도의 평가일 뿐이다. 다른 미시경제 전담 부처에서 이런 평가는 낙제점이다.
이병기 위원이 ‘진흥 업무의 한계’에 대한 조언을 남기고 돌연 떠난 자리는 너무 커 보인다. 조화가 깨지고, 2기 방통위에서 우려됐던 ‘여야 정쟁의 장’이 조기에 현실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기 방통위는 정쟁이 더욱 격화될 2기를 위해서라도 남은 기간 독임제 기능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최소한 사무총장제라도 실현시켜, 합의제 기구의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산업진흥 역할을 수행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1기는 물론 2기까지 방통위는 업계의 ‘정통부’ ‘미래부’ 신설이라는 요청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게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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