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집과 가족이 전부다” “자동 안내 길 찾기 프로그램이 지도보다 편리하다” “암산한 값을 확신하지 못해 계산기로 다시 검산한다”
이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의 경험을 갖고 있다면, ‘디지털 치매’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탄생한 신조어 중 최근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디지털 치매다.
우리는 이 현상을 좀더 근본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발달된 기술 때문에 처리해야 할 정보의 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부가적 과제에도 직면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세르는 저서인 ‘호미네상스(hominescence)’를 통해 디지털 치매에 대한 과도한 경각심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진화과정에 따른 뇌기능의 변화를 일례로 제시했다. 문자와 인쇄술의 발명으로 기억력은 감퇴했지만 기억의 압박에서 해방돼 좀더 창조적인 일에 뇌기능을 활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디지털 치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억력의 감퇴를 막기보다 정보를 찾아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 ‘창의적 사고력으로 연결’하는 것이 해결책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창의적 사고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의력을 키워야 할 중요한 시기에 단순 암기나 문제풀이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우리 아이들을 내몰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공계와 인문계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융합과 창의성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인성교육도 강화돼야 한다.
디지털 치매가 병이나 질환이 아닌 기술환경의 진보에 따른 과도기 단계로 진단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 지식기반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창의력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새롭고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고,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대를 리드할 수 있는 열쇠다.
이정규 한국과학창의재단 홍보협력사업실장 counsel2u@kof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