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개혁 후유증이 상당히 큰 것 같다. 최근에는 춘궁기를 앞두고 식량난이 가중돼 설상가상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북한의 조기붕괴론을 거론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느낌이다. 북한 특유의 강력한 중앙집중체제가 살아있고, 아직 동원이 가능한 내부자원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주민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북한은 오래전 가동 중단했던 핵심 기간산업 재건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는 금속분야의 ‘주체철’ 생산, 기계분야의 CNC화, 화학분야의 비닐론과 석탄가스화 등이 있다. 이들 상당수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정상가동하지 못한 것으로, 북한의 자원동원 능력이 아직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자원에 대한 최고 지도자와 언론의 평가와 각계의 대응도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성진제강소의 ‘주체철’ 생산체계 완성을 “제3차 지하핵실험에 성공한 것보다 더 큰 성과”라고 치하했고, 2.8비닐론공장 재가동에 대해서는 “인공위성이 단번에 몇 개나 날아오른것 같은 놀라운 소식”이라고 치하하며 함흥에서 개최된 경축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개 주력공장 재가동에 대해 과거에 볼 수 없던 파격적 대우와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감 결여와 성과 도출에 대한 조급성을 노출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현 체제와 제도하에서는 대규모 투자로 소기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북한의 많은 정책 담당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02년 7월 1일에 사회주의 중화학공업체제 비효율과 낮은 생산성 해소를 위해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시장이 발달하고 국가통제를 벗어난 영역에 자본이 집중하면서 빈부격차와 부패가 만연하게 됐다. 지난해에 단행한 화폐개혁은 이런 폐단을 억제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강화, 기간산업에 자원을 집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화폐개혁 부작용 못지않게 과거에 만연한 비효율적 투자가 다시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초고전력 전기로에 의존하는 ‘주체철’ 생산과 카바이드에 의존하는 비닐론 모두 선진국은 사용하지 않는 낙후한 기술로 막대한 전력과 석탄이 소모된다. 자체 생산보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더 저렴한 것이다. 북한의 전력 생산과 석탄 매장량은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가까운 장래에 그 소비량의 급격한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화력발전 비율이 50%를 넘는 북한 실정에서 석탄 공급이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고, 이는 전력 수요가 높고 석탄 채굴과 수송이 어려운 겨울철에 더 심화할 것이다. 결국 멀지 않은 장래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석탄에 대한 수출 금지와 중앙통제가 강화되고 나중에는 화학분야에 쓰이는 석탄을 줄이고 전력분야로 공급을 확대할 것이다.
고난의 행군 기간중 합병했다 근래 분리된 전기공업성과 석탄공업성의 재합병 조치도 생각할 수 있다. 최고 지도자 건강이나 후계자 문제 같은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이런 동향이 북한의 정책변화 시기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보통 체제 전환국들은 시장경제로의 개혁과 과거로의 회귀를 반복하면서 연착륙하거나 정권의 위기를 겪었다. 북한의 정책변화가 언제 일어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글로컬협력센터 소장 cglee@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