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13년 전인 1997년 5월11일은 컴퓨터 역사가 새로 쓰인 날로 기억된다. 컴퓨터가 인간과의 체스 대결에서 세계 챔피언을 이긴 날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이다. 당대 최상급 처리능력을 보유한 고성능 컴퓨터인 슈퍼컴퓨터는 최근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활용도가 급증하는 추세다. 슈퍼컴퓨터의 확보가 국력 증진의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이 제기될 만큼 슈퍼컴퓨터의 경제적 가치는 막대하다. 슈퍼컴퓨터 순위 정보를 제공하는 슈퍼컴퓨터탑500(www.top500.org)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순위 500위에 포함되는 슈퍼컴퓨터를 단 2대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도 보유하기 어려운 슈퍼컴퓨터를 기업들이 손쉽게 빌려 쓰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덕분이다. 일례로, 대용량의 유전자 정보를 고속으로 정밀하게 처리해야 하는 유전자 연구를 위해 과거에는 슈퍼컴퓨터를 구축해 연산해야 했지만, 삼성SDS가 지난해 구축한 바이오인포매틱스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하면 그보다 훨씬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같은 수준의 컴퓨팅 파워를 이용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약 130년 동안의 신문기사 1100만 개(약 4TB 분량)를 PDF 파일로 변환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할 당시, 아마존의 S3와 EC2 서비스를 활용했다. 일반 서버를 이용하면 약 14년은 걸릴 엄청난 작업이 2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끝났으며, 프로젝트 비용은 1465달러에 불과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선보일 웹 기반 무료 오피스 서비스인 ‘오피스 BPOS(Business Productivity Online Suite)’도 대표적인 클라우드 컴퓨팅 사례다. 설치형 소프트웨어와 온라인 기반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내 핵심 정보를 외부에 보내기를 꺼리는 기업을 위해 ‘시드니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베이스를 분리하면서도 마치 하나의 시스템에서 가동되는 것처럼 운영되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가령 미국에 있는 클라우드 기반 운영체제 플랫폼에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놓고, 데이터베이스는 서울의 본사 데이터센터에 두는 방식이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곧잘 전기의 대량생산체제에 비유되곤 한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자 처음엔 기업마다 각각 발전기를 돌렸지만, 이후 지역마다 대형 발전소가 생기자 기업들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끌어 쓰고 사용한 만큼 요금을 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전기를 전달하는 전력선 역할을 하는 것이 초고속 인터넷이다. 기존의 컴퓨팅이 사용자가 데이터센터나 컴퓨터,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데이터 등을 ‘소유’하는 방식이었다면, 클라우드 컴퓨팅은 모든 것이 갖춰진 네트워크에 ‘접속’해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쓴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미국 사회사상가 제레미 리프킨은 “앞으로 경제 생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물건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서비스와 경험에 대한 접속이 될 것이다. 소유권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접속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라고 예견한 바 있다. 슈퍼컴퓨터를 전기처럼 빌려 쓰는 시대, 한국의 IT 기업들은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김 제임스 우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이사 jameskim@micro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