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PC 제조사인 HP가 스마트폰의 원조 ‘팜’을 12억달러(약 1조3300억원)에 인수한다고 28일(현지시각) 발표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팜의 자체 운용체계(OS) ‘웹 OS’와 애플리케이션 스토어 등을 전액 현금으로 인수한다는 조건이다.
팜은 스마트폰 개척자로 불리는 제조업체로 ‘팜 프리’ 등이 대표적인 제품이며, 자체 OS와 2000여 애플리케이션이 등록된 앱스토어 ‘앱카탈로그’ 등을 보유했다. 특히 팜 OS는 멀티태스킹에 강하고 비주얼 구성요소, 검색 등이 경쟁사에 비해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허만 해도 800개 이상에 달한다.
피트 콘레이 MDB 캐피털 애널리스트는 “팜의 특허 포트폴리오는 적어도 14억달러 이상”이라며 “이를 독점적으로 사용함으로써 HP는 다른 경쟁자를 한순간에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HP는 인수합병(M&A)을 계기로 고전 중인 스마트폰 및 모바일 기기 사업을 보강할 계획이다. 특히 자체 하드웨어뿐 아니라 OS 및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롤 보유한 애플, 구글 등과 비슷한 모델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토드 브래들리 HP 퍼스널시스템그룹(PSG) 부사장은 “스마트폰 시장은 강제적인 선택”이라며 “이번 인수로 HP가 시장에서 더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또 휴대폰 판매 및 HP 태블릿PC ‘슬레이트’ 등에도 팜의 소프트웨어를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휴대폰과 PC 영역 붕괴의 신호탄=HP의 팜 인수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팜이 M&A 매물로 나오자 애널리스트들은 대만 HTC나 LG전자 등 아시아권 제조업체가 눈독을 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HP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소프트웨어를 넣은 개인정보단말기(PDA) 폰이나 PC를 제조해왔으며 조만간 구글의 모바일 OS 안드로이드를 채용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는 점도 HP와 팜의 결합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휴대폰과 PC 시장의 접점을 발견했다면 HP와 팜의 결합은 ‘공식적인 붕괴 선언’이다. 최근 델, 에이서, 레노버 등 주요 PC제조사는 MS, 구글 등의 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HP의 라이벌인 델은 올해 말 안드로이드 탑재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HP는 그동안 스마트폰 광풍에서 다소 떨어져 있었다. 2007년부터 스마트폰과 유사한 ‘아이팩(IPAQ)’을 판매했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일부 비즈니스맨으로 대상을 한정하면서 반응이 차가웠다. 첫해 매출 5억3100만달러에서 2009년 1억7200만달러로 크게 줄었다. 애플의 아이폰, 림(RIM)의 블랙베리가 같은 시기 크게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교된다. HP 이사들은 “스마트폰 판매가 곧 랩톱(노트북PC)의 연간 판매량과 같아지는데다 2012년까지 전체 PC 판매량을 능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 나온다. 내부적으로도 위기감이 컸다”고 말했다.
◇합병 시너지 날까= HP와 팜은 이번 인수합병이 ‘윈윈 전략’이라고 자체 평가했다. HP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성공적인 안착을, 팜 또한 회사의 명맥과 기술력을 이어 갈 수 있게 됐다는 게 이유다. 브래들리 HP 부사장은 “팜의 소프트웨어를 더 넓고 공격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루빈스타인 팜 최고경영자(CEO)도 “HP의 혁신적인 문화와 스케일, 글로벌 영업력 등을 감안하면 ‘웹OS’를 빠르게 키워줄 적절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에비앙 시큐리티스의 한 애널리스트는 “HP는 세계 최대 PC 제조사로 구매 단위가 훨씬 커 싼 값에 부품을 조달할 수 있어 위협적”이라고 분석했다.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냉정한 시각도 있다. 댄 포머 IT칼럼니스트는 팜이 웹 OS와 유저인터페이스 등 일부 기술에서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소비자들이 사지 않고 개발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은 ‘실패한 플랫폼’이라는 것을 이유로 이렇게 전망했다.
워싱턴타임스도 기사에서 “HP가 12억달러를 낭비했다. 팜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며, OS도 안드로이드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폄하했다.
이성현기자 argo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