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진라이’와 ‘쩌우추취’. 중국은 외국자본 유치와 관련해 ‘인진라이(끌어들인다)’, 해외투자와 관련해 ‘쩌우추취(밖으로 나간다)’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인진라이는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달러와 해외자본이 필수적이었던 중국이 해외투자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비롯됐다.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상당부분 인진라이 정책에 힘입은 것이고 신화통신의 2008년 5월 보도에 의하면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480여곳이 중국에 투자했다. 그런데 외국의 기술과 자본에 세금감면을 비롯한 각종 우대혜택을 부여하면서 투자를 유도했던 중국 정부의 외국인 투자 정책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세계적인 대기업이 앞다퉈 중국에 투자하자 외국인의 투자대상 기술과 환경 심사가 강화되고 세금혜택도 점차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된 중국정부는 사실상 ‘수요독점(monopsony:반독점법에서 판매자는 다수가 존재하는 데 비해 구매자는 한 사람뿐인 경우를 의미)’ 지위를 이용하게 됐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정부로부터 환영받았을 외국기업의 투자도 최근 중국의 기술수준이 급성장함에 따라 외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LCD 패널 공장의 설립 건을 보더라도, LG디스플레이나 삼성전자와 같이 첨단 기술을 가진 해외 업체가 진출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쉽게 허가를 내주지 않고 해외 업체 간의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실리를 챙기는 태도를 취했다.
쩌우추취 정책에는 더욱 적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민간기업의 해외투자는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시행 후에도 한동안 금지되다 1999년 공산당이 쩌우추취 정책을 시행하면서 장려되기 시작했다. 이어 2009년 8월 1일 시행된 ‘국내기업 해외투자 외환관리와 관련한 문제에 관한 통지’는 중국기업의 해외진출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 투자주체와 자금에 관한 기준을 완화했다.
전통적으로 한국기업과 한국인들 사이에는 중국회사의 기술력은 한 수 아래며, 중국의 어떤 분야가 한국을 따라오려면 몇 년 걸린다는 식으로 계산하고는 했는데 최근 쩌우추취의 동향을 보면 이 같은 셈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지리자동차의 볼보자동차 인수나 중국계 펀드인 말리온홀딩스의 최고급 일본 골프채 업체인 혼마 인수 사례 등을 보면 중국이 열심히 한국의 기술력을 좇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첨단 기술이 있는 회사를 인수해 단번에 한국을 앞지르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게 됐다.
중국 상무부의 ‘2010년 전국 대외투자합작사업에 대한 지도의견(2월 26일)’에 따르면 중국은 제조업·첨단기술·신에너지 등에 대한 해외투자를 장려하고 국제 유명브랜드와 영업망 등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며 해외 에너지 개발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 비금융류 해외직접투자 목표가 460억달러에 이른다.
◇중국투자유한책임공사(중국투자공사)의 글로벌 투자 확대= 민간기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쩌우추취는 정부 부문에서 국유기업인 중국투자공사의 글로벌 투자확대로 나타났다. 중국투자공사는 지난해 9월 29일 중국 재정부가 약 2000억달러를 출자해 중화인민공화국공사법에 따라 설립한 중국의 국부펀드다.
중국투자공사의 업무범위는 외화표시 국내 채권과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 채권·주식·유가증권·파생상품 등의 해외투자, 자산운용업자 등을 통한 위탁투자, 금융기관을 통한 위탁대출, 외화자산 수탁관리, 지분투자 펀드 및 펀드관리회사의 발기 설립, 국가 유관부서가 비준한 기타 업무 등을 포함한다.
중국투자공사는 해외에 상장된 중국회사에 대한 투자와 소극적인 재무적 투자 등을 제외하고 중국 내 비금융기관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중국 금융기관에 대한 투자는 중국투자공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자회사인 중앙회금투자유한책임공사(중앙회금)를 통한다. 그런데 중앙회금은 주요 핵심 금융기관(중국공상은행 지분 35.41%, 중국은행 지분 67.53%, 중국농업은행 지분 50%, 중국광대은행 지분 70.88%, 중국건설은행 지분 48.23% 등)의 대주주로서 이들을 지배(2009년 6월 30일 기준)한다.
중국투자공사는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96억3000만달러 상당의 미국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투자공사가 투자한 회사들로는 테크리소스(35억달러), 모건스탠리(18억달러), 국제적 투자관리회사인 블랙록(7억1380만달러), 코카콜라, 모토로라, AIG, 애플, 파이저 등 널리 알려진 회사가 상당수 포함됐다. 그런데 사모투자회사인 블랙스톤그룹의 30억달러 투자(지분 약 10%)와 후속 투자는 공시내용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펀드를 통한 미국회사에 대한 간접투자도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 중국투자공사가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미국 회사의 지분은 공시된 내용보다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투자공사의 성장은 △투명성이 부족한 중국투자공사의 투자활동이 금융시장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 △중국정부가 전통적인 미국 국채 보유에 의한 달러화의 운용방식을 적극적인 해외투자로 전환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며 이에 따라 미국 국채의 가격이 하락하고 세계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중국 정부 소유 펀드라는 특성으로 투자대상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에서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투자공사는 국부펀드들의 모임인 ‘IWG’의 회원이다. 따라서 IWG가 2008년 10월 합의한 ‘산티아고 원칙’의 준수가 요구된다. 산티아고 원칙은 △국부펀드의 법적 구조와 목적, 거시경제정책적 협력 △국부펀드의 틀과 지배구조 △투자와 위험관리 방식 3가지 핵심 분야를 다룬다. 이 원칙은 자발적인 준수가 요구되며 위반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규정이 없는 게 한계다. 그러나 어느 국부펀드가 산티아고 원칙을 위반하는 정도가 클수록 다른 국가들로부터 압력과 비판을 받게 되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투자대상국이 해당 국부펀드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산티아고 원칙은 비강제적 규정이지만 국부펀드를 규율하는 중요한 규범이 된다. 최근 해외의 한 조사에 의하면 중국투자공사의 산티아고 원칙 준수 정도가 26개 국부펀드 중 5위라는 발표가 있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 ‘온드 바이 차이나(Owned by China)’로=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지난해 말 현재 2조4000억달러(약 2700조원)에 이르렀다. 이는 중국투자공사가 설립된 2007년에 비해 2년 반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약 1조달러가 증가된 것이다.
중국은 이미 8890억달러(2010년 1월) 상당의 미국 국채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채권국인데 미국 국채는 미국의 누적되는 재정적자로 달러 가치의 하락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수개월간 미국 국채의 일부를 매각한 것도 미국 국채의 비중을 축소하고 투자대상을 다변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에 중국은 넘치는 달러를 운용하기 위해 중국투자공사를 통한 글로벌 투자의 확대를 도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라드 리욘스 스탠더드차터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작년 중국의 쩌우추취 전략에 따른 해외투자에 대해 “현재 우리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국산’이라는 석 자가 앞으로 10년 내에 ‘중국이 소유함’이라는 문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 푸둥지구에서 일하는 중국 금융권 관계자의 이야기로는 “중국투자공사는 국유기업이고 그에 의한 투자는 막대한 달러보유고를 해외에 투자해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막고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므로 중국인이 실제로 느낄 수 있는 혜택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외에 투자하지 않으면 빠른 속도로 유입되는 달러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해외투자는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시사점=국내 언론에서도 중국투자공사의 투자규모와 국내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국투자공사는 국부펀드라는 특성이 있으므로 주권면제 대상이 되는지의 문제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중국투자공사의 투자에 대한 이자 및 배당소득이 과세대상인지, 투자대상국에서 소송의 피고가 될 수 있는지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도 국내에서는 이에 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우지웨이 중국투자공사의 동사장(법정대표) 겸 수석집행관이 “이머징 마켓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 중국의 차세대 국가주석으로 거론되는 시진핑은 “쩌우추취 전략을 강화하는 것은 중국경제가 창조적이고 새로운 발전동력을 가지고 내재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전궤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추진하기 위함이고 이를 통해 중국의 발전이 세계경제의 회복과 지속적 발전에 대해 더욱 큰 공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쩌우추취 정책과 함께 중국투자공사의 해외투자가 계속 확대되고 한국 우량기업에 대한 투자도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년 내에 한국 대기업의 주주총회나 금융감독원의 공시에서 중국투자공사의 이름을 볼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중국투자공사와 그 투자의 효과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연구와 분석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상하이(중국)=김성욱 법무법인태평양 상하이사무소 변호사 sungwook.kim@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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