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가든파이브 안에 위치한 `2030 강남청년창업센터`를 찾았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이 빼곡한 이곳엔 `엔피커`란 회사가 입주해 있다. 벤처 CEO라고 해도 한참 젊어보이는 정철 대표이사가 기자를 맞았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20대 후반의 젊은 청년 4명과 컴퓨터 5~6대가 전부다. 하지만 이 회사를 눈여겨보는 곳이 많다.
작년 KT 벤처 어워즈에서 우수상을 탔고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실험실 창업 지원사업에서 지원도 받는다. 대학 기술지주회사가 국내 처음으로 학생이 창업한 회사에 투자를 결정한 곳도 바로 이 회사다. 2008년 이후 10개의 대학 기술지주회사가 만들어졌지만 투자는 교수 창업 회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올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3월 초에 엔피커가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데 이어 4월엔 고려대 기술지주회사가 학생 창업회사인 KU디지털미디어랩에 투자하기로 했다.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벤처 붐 당시엔 청년 창업이 어렵지 않았지만 당시의 `학습효과`로 웬만해선 자금 모집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모교 기술지주회사가 돌파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엔피커는 서울대 국사학과 01학번 정철 대표와 같은 대학 언론정보학과 02학번 차경민 이사가 수업 도중 나눈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회사로 처음부터 일이 순탄치는 않았다. 이 회사의 아이템인 `소셜 북마킹`은 책을 읽을 때 중요한 부분에 표시를 해 놓듯이 인터넷을 할 때 중요한 화면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사용자가 편집을 한 뒤 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요새 `뜨는` 아이템이지만 일반 금융 자금 유치는 어려웠다. 정 대표는 "창투사도 만나봤지만 어느 정도 진전된 뒤에 다시 보자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였다"고 말한다.
이때 모교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서울대 기술지주회사가 2000만원 투자를 결정한 것.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는 올해 4~8개의 학생 창업 회사를 더 골라 비슷한 규모로 투자할 계획이다. 김한균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투자기획실장은 "보통 벤처기업이 성장해 기업공개(IPO)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작업은 8년이 걸리고 그나마 창업한 회사 가운데 상장에 성공하는 곳도 1% 미만"이라며 "그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에 투자하는 것은 성공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성장 가능성이 무궁한 청년 CEO를 제대로 길러 수익을 내는 전략인 셈이다. IT 분야에서 뛰어난 창업경력을 쌓은 `팀`은 기업들이 탐내는 핵심 인재로 꼽힌다. 그래서 일회성 창업지원금이 아니라 사업에 필요한 노하우까지 전수한다. 엔피커 투자결정 이후 기술지주회사는 정 대표에게 자본잉여금을 쌓을 수 있게 증자방안을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법인 설립이나 특허권 출원 등 회사를 꾸리는 기본적인 지식도 전수한다. 김 실장은 "투자 결정을 할 때 중요한 부분이 창업자가 배우려는 자세가 있는지 여부"라면서 "3~4년 뒤 다른 큰 기업에 갈 수도 있고, 기술지주회사의 기술과 이들을 결합시켜 큰 기업으로 키워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기술지주회사가 2억원을 투자한 KU디지털미디어랩은 정보올림피아드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고대 학생들이 만든 회사다. 현재 아이폰 앱 개발에 주력해 이달 중순쯤 신규 앱 4종을 출시할 계획이다. 고려대 기술지주회사 정경호 투자기획실장은 "올 2월쯤 학생들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지주회사를 찾아왔다. 개발능력도 뛰어나고 굉장히 창의적인데 큰 조직에 눌려 있는 것을 싫어한다"며 "구글이나 MS는 싫다고 하면서 학교에서 지원을 해주면 열심히 일해 보겠다고 해 결국 투자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업 위험이 크진 않을까. 정 실장은 "사업성이 있기 때문에 투자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면서 "창업 후 4~6개월만 지나면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이재화 기자 / 이기창 기자]